박수빈 사진부장
박수빈 사진부장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고맙다는 말, 덕분이라는 말. 그다지 길지 않은, 처음 들어본 어색한 말이 아님에도 정작 입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 그 말들. 나의 감정을 쉽사리 표현하지 못하는 그 상황에 직면할 때면 나는 항상 “고마…”라며 말끝을 흐렸다. 특히 나의 곁에 있던 가까운 이들에게 나는 나의 감정을 의도치 않게 숨겨왔다. 많고 많은 과제보다 이 말 한마디를 뱉는 게 더 어려웠다. 셔틀버스 카지노 사이트님에게, 세탁소 주인 아저씨에게, 마트 종업원에게 매일 같이 건네던 ‘감사하다’, ‘고맙다’라는 말은 방향이 달라지자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고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나는 항상 미달이라고 생각했다. 

11월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시골에 사는 가족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날따라 오전 수업이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유난히 쌀쌀한 가을바람이 버스에 들어와 내 얼굴을 스쳤기 때문일까. 곧 고등학교에 진학해 할머니와 떨어지게 될 손녀의 모습을 담은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내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와의 이별이 다가옴에도 애써 무뚝뚝한 척을 하려는 듯한 중학생 손녀에게서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고, 그런 손녀를 보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할머니, 엄마, 아빠가 생각났다. 유치원, 초등학생 때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사랑한다는,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당장 부모님께 전화를 거는 것을 망설이던 내가 싫었다. 나름 어른이라고 자부했지만, 아직도 서툰 내가 미웠다. 

카지노 사이트에 다니며 고등학생 때와의 차이점을 가장 크게 체감한 부분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항상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발버둥 치던 나에게 주변 동생, 친구, 선배들은 부족한 점을 항상 채워줬고, 모든 게 서툴렀던 나는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수고했어’, ‘고생 많았어’와 같은 말들로 나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해 왔지만 절대로 입 밖으로 ‘고맙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간혹 인터넷 채팅에서만 전하던 “땡큐”라는 말이 현실에서는 내 목구멍 밖으로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의 고마움은 내 마음속으로만 쌓여갔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샌가 자연스레 잊혔다. 

때로는 이런 내가 전형적인 MZ세대의 모습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에 익숙해진 우리가 현실에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면서 현실을 외면해 보기도 했지만, 항상 바뀌어야 하는 것은 나라는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반복되는 의미 없는 생각 속에서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툰 모습을 추억으로만 간직하기로 했다. 

나의 마음속에 감정을 쌓아뒀던 과거는 지나가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더는 가슴 속에 쌓인 감정들이 해묵지 않도록 열렬하게, 나의 마음을 표현해 보려 한다. 말 못 한 지난 감정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새로 다가올 생각이 쌓여 나를 흔들어놓지 않도록, 가볍지만 견고한 나의 가슴 속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오랜 시간 쌓여온 나의 마음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심이 닿게 될 그 사람들에게 어느 때보다 간절히 말하고 싶다. 

“고마워, 나와 함께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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