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포화

이수현

 

그러니까 그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습격이었다.

 

엠 카지노는 경련하듯 숨을 삼키며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분간할 수 없이 어두웠다. 다급하게 몰아쉬는 호흡이 거칠었다. 꿈 속에서 엠 카지노를 집어삼켰던 바닷물의 정체는 온몸을 휘감고 있는 이불인 듯싶었다. 이젠 잘 믿지도 않는 신을 찾으며 살려달라 외칠 때마다 새어나오던 거품이 아직도 입가에 말라붙어 있는 기분이었다. 엠 카지노는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고개를 돌려 휴대폰 시계를 확인했다. 문득 목덜미에서 낯선 통증이 느껴졌다. 근육통이나 인후통과는 다른 따끔하고 시큰한 아픔에 엠 카지노는 눈살을 찌푸리며 귀밑에 손을 갖다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공포에 질려 숨을 들이켰다.

목덜미에서 말캉하고 촉촉한 물체가 만져졌다. 손길이 닿아도 아프지는 않았으나 미끈한 점액질이 조금씩 배어났다. 엠 카지노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자는 동안 부종이나 상처가 생긴 모양이었다. 어쩌면 당장 수술로 떼어내야 하는 악성 종양일지도 몰랐다. 확실한 건 지금 목 양쪽에 달라붙어 있는 물체는 엠 카지노의 신체에 지금껏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엠 카지노는 잠시 동안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가만히 얼어붙었다. 이대로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제법 긴 정적 끝에 휴대폰 잠금을 해제하고 카메라를 실행하는 엠 카지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엠 카지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눈을 꾹 감았다. 한쪽 눈만 간신히 뜬 채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돌렸다. 겁에 질린 하얀 얼굴과 목덜미에 자리한 시뻘건 조직이 눈에 들어왔다. 엠 카지노는 끝내 으아악, 하고 비명을 토해냈다. 아코디언처럼 주름져 불규칙하게 일렁이는 얇은 핏빛 살덩이가 엠 카지노의 하얀 목에 달라붙어 있었다.

엠 카지노가 숨을 멈췄다. 심장이 터질 듯이 빠르게 뛰었다.

 

이건, 이건…

아가미다.

 

엠 카지노는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간 어린이 과학 축제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실험복을 입은 고등학생 형이 지키고 있던 물고기 해부 실험 부스 때문이다. 약품으로 기절시킨 물고기가 둥둥 떠오르자 짧게 묵념한 형은 어설픈 손놀림으로 물고기의 배를 갈랐다. 칼이 요령 없이 파고든 배 부분의 비늘들이 어지럽게 흩어지자 형이 쓰읍, 하고 숨을 삼키며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이내 물고기의 배가 열리고 장기들이 하나둘 몸뚱이를 내었다. 엠 카지노의 곁에 서 있던 동갑내기 두어 명은 펄떡이는 심장을 보고 징그럽다며 달아났다. 부스 앞에는 엠 카지노만이 남아 물고기가 놓인 도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친구는 괜찮아요? 안 무서워요?”

 

안 무서워요, 물고기 재밌어요.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엠 카지노를 바라보는 형이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 됐다. 물고기의 배를 투박하게 벌려낸 칼이 매끈한 몸통을 지나 대가리 쪽으로 움직였다.

 

“이거 봐봐요. 여기 보이는 빨간 게 아가미예요. 아가미가 뭐 하는 건지 알아요?”

 

아니요. 엠 카지노가 무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가미는 물 속에 있는 산소를 걸러주는 기관이에요. 아가미가 있어서 물고기들이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거예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검붉은 조직을 들여다보던 어린 엠 카지노는 생각했다. 빨갛다. 촉촉할 것 같아. 엠 카지노는 아가미 없는 물고기를 떠올리며 조용히 숨을 참아 보았다. 금세 머리가 띵해지고 가슴이 터질 듯 조여왔다. 물고기한테 아가미는 소중하겠구나.

그러나 땅 위에서 호흡하도록 설계된 인간 엠 카지노에게 아가미는 흉물스러운 살덩이에 불과했다. 제 몸 안에서부터 물비린내가 풍겨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엠 카지노가 헛구역질을 했다. 손을 덜덜 떨다가 꼴사납게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엠 카지노는 벌떡 일어나 옷장 문을 열어젖혔다. 문 안쪽에 붙어 있는 전신거울에는 시뻘건 살덩이를 매단 채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자신이 있었다. 잠시 동안 얼빠진 채 제자리에 서 있던 엠 카지노가 성마르게 문손잡이를 돌렸다. 삼 분 거리의 원룸텔로 달려가 206호의 문을 두드리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주연이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

 

“야, 이주연. 나 어떡해? 진짜 어떡해?”

 

“뭘 어떡해. 늦잠 잤냐? 나 오늘 공강인데 이렇게 깨운다고.”

 

“아니, 나 목에.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생겼어.”

 

목에 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주연이 엠 카지노의 목둘레를 샅샅이 살폈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기는 엠 카지노도 매한가지였다. 이토록 눈에 띄는 아가미를 보지 못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주연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은 여전히 사라질 줄 몰랐다.

 

“뭐 꿈 꿨냐? 아무것도 없는데.”

 

“뭐라고? 다시 제대로 봐봐. 이게 안 보일 수가 있나?”

 

“아니, 진짜 뭐 없다니까. 갑자기 무서워지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손가락이 새로 돋은 아가미를 가리키고 있는데도 주연의 표정에는 공포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윤엠 카지노 헛소리 그만하고 롤이나 하자. 나 애들이랑 하고 있었는데 니만 오면 5인큐. 엠 카지노는 대꾸하지 않은 채 뒤돌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엠 카지노는 아가미가 자신의 눈에만 보인다는 걸 천운으로 여기기로 했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 오전 열 시 수업에 출석한 엠 카지노는 컴프1 아가미남으로 에브리타임에 박제되는 대신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엠 카지노는 여전히 거울을 보는 일이 괴로웠다. 목도리도마뱀 같은 꼴도 우스웠지만 핏빛이 주는 본능적인 불쾌감이 가장 컸다. 게다가 아가미는 꼴에 점막이랍시고 다른 피부보다 감각이 훨씬 예민했다. 성의없이 들쳐멘 백팩 끈이 목덜미를 스칠 때마다 비명을 삼킨 게 오늘만 세 번째였다. 무의식적으로 아가미를 쓰다듬는 손을 억지로 끌어내리며 엠 카지노는 발걸음을 옮겼다. 발바닥에 아가미의 점액질이 눌러붙은 기분이었다.

한 시간 뒤 교내 수영장에 들어선 엠 카지노가 싸한 락스 냄새를 들이켰다. 언제 마지막으로 입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수영복 차림이 어색했다. 수업이 끝난 뒤 자취방 옷장을 샅샅이 뒤져 간신히 찾아낸 거였다. 엠 카지노는 준비운동 조로 가볍게 허리를 돌리고 손발을 털었다. 수영장 턱에 걸터앉아 발끝부터 물에 담그자 팔뚝에 닭살이 섰다. 아가미에도 소름이 돋을지 생각하며 실없이 목덜미를 훑은 엠 카지노가 머리끝까지 단번에 물속으로 집어넣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인간으로 태어나 처음 해 보는 행위에도 신체는 마치 오랫동안 해 왔던 일인 듯 제 본분을 다했다. 차가운 물이 싸한 감촉을 남기며 아가미를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가슴 속으로 훅 끼쳐 들어오는 산소. 그리고 매캐하게 전신을 압박하는 화학 물질의 향…

크학, 켁, 콜록. 엠 카지노가 레일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몸속에 락스가 고인 듯 역겨운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한참 만에 기침이 잦아들고도 엠 카지노는 한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레인 두 개를 사이에 두고 훈련 중이던 수영부원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엠 카지노를 곁눈질했다. 이제 물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엠 카지노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누군가 물속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다는 게 위험을 암시하는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엠 카지노가 튕겨 나왔는데도 그 사실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엠 카지노와 나머지 인류 사이가 투명한 벽으로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엠 카지노가 있는 쪽 세상만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물속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엠 카지노는 콧속이 매워지는 걸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락스 소독이 과했던 모양이었다.

 

바다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엠 카지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멍하니 응시했다. 알고리즘을 짜듯 평생을 살아온 윤엠 카지노 머리에서 이런 결정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서였다. 위장까지 박박 문대는 것 같은 락스 냄새 때문에 수영장 물 속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람 드글대는 근처 천변에서 냅다 물속에 머리를 처박을 용기도 없다. 좁아터진 원룸 화장실에 물을 받을 만한 욕조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물에 들어갈 수 있는 선택지는 인파가 없는 해변뿐이었다. 사실 무엇보다도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가미를 지니게 된 이상 그것의 기원을 추적해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엠 카지노는 생각했다.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마냥 짜디짠 소금물 속에서 숨을 쉬고 나면 비로소 제 아가미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강을 거슬러 알껍질을 찢은 자리에서 산란하는 연어처럼.

그래서 엠 카지노는 가장 가까운 바다로 가는 광역버스 막차에 올라탔다. 다음날에는 오전 수업이 연달아 두 개 있었다. 엠 카지노는 생각을 지우려고 애쓰며 이어폰을 꽂고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노래를 재생했다.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을 최대한 빨리 폐기해야 한다는 건 프로그래밍의 제1원칙이었다. 어떤 논리를 가져다 대도 설명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인간의 눈부신 지성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빨간 버스는 엠 카지노를 질척이는 서해 바다에 토하듯 내려놓고 떠났다. 엠 카지노는 양발에 꿰신은 슬리퍼를 털썩이며 검게 일렁이는 해안선을 향해 걸었다. 발가락을 파고들고 바지 밑단을 더럽히는 뻘의 감촉이 불쾌했다. 엠 카지노는 잠시 돌아갈까 고민하다 자신이 막차를 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퇴로를 차단한 스스로의 행보에 절망했다. 걸음을 내딛을수록 발밑이 끈적하게 밑창을 붙잡아 왔다. 일단 맑은 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 얼굴을 디밀든 숨을 쉬든 할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진흙으로 엉망이 된 바짓단을 걷을 생각조차 않은 채 엠 카지노는 첨벙첨벙 파문을 일으키며 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발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바닷물이 아릴 정도로 차가웠다.

마침내 종아리까지 바닷물에 잠기자 엠 카지노가 걸음을 멈췄다. 엉덩이가 젖는 사태만은 피하기 위해 어정쩡한 자세로 반쯤 주저앉았다. 수면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던 엠 카지노가 움직임을 뚝 멈췄다. 물 속에 담근 제 발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달조차 없는 한밤중의 바다는 숨통을 틔워 주기보다는 멎게 할 것만 같았다. 해저는 완전한 미지였다. 불현듯 어젯밤의 꿈이 다시금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한 번 발을 들이고 나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유치한 공포가 일었다. 엠 카지노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였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조심해. 십 분 뒤에 물 들어와. 여기 서해라서 물 엄청 빨리 찬다.”

 

느닷없이 들려온 사람의 말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엠 카지노가 움찔 몸을 떨며 주위를 살폈다.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검은 인영이 서 있었다. 말을 뱉는 요령이 없는지 조금씩 갈라지는 높은 목소리. 새까만 시야에서 흐릿하게 흔들리는 마른 몸과 긴 머리칼. 엠 카지노가 아는 바 이 특징들을 조합해 도출되는 인물은 단 한 명이었다. 기계공학과 21학번 정희준. 희준과의 관계 정의에는 언제나 긴 부연 설명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지만 같은 반은 해 본 적 없는 사이. 같은 학교 같은 단과대지만 한 번도 수업에서 마주친 적 없는 사이. 새벽 한 시 십 분에 사람 한 명 없는 밤바다에서 마주친 사이라는 수식어가 더해져도 별달리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둘의 접점은 기묘했다. 뭐야, 정희준. 깜짝이야. 여기서 뭐해. 괜스레 머쓱해진 엠 카지노가 한껏 움츠렸던 어깨를 내려뜨리고 희준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다음 순간 엠 카지노가 숨을 멈췄다.

희준의 양쪽 목덜미에 붉은 살덩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렇게 복숭아나무 밑이 아니라 조개구이집 테이블 앞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결의가 맺어졌다. 아가미 클럽이라는 이름은 언젠가 희준이 졸면서 봤던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 희준은 희멀겋게 생겨서는 의외로 주당이었다. 덕분에 금방 혀가 꼬부라진 엠 카지노만 푸념인지 투정인지 모를 말들을 연신 쏟아냈다. 야, 희주나. 우리 이제 어떻게 사냐. 갑자기 어느 날 아가미 보인다는 사람 생기면 어떡해. 우리 막 정부 출원 연구소, 이런 데 잡혀가는 거 아니냐. 내가 거기 연구원으로 취직하고 싶댔지 언제 실험체로 취직하고 싶댔냐… 테이블에 반쯤 엎드린 엠 카지노를 앞에 두고 느릿하게 자작하던 희준은 한 마디 한 마디에 성실하게도 답해 주었다. 그냥 살면 되지, 다른 사람 눈엔 보이지도 않는데. 보인다는 사람 생겨도 우리는 그쪽이 안 무서운데 그쪽은 우리가 무서울 테니까, 무서운 쪽에서 꼬리 내리지 않을까. 연구원이랑 실험체 동시에 하면 되지. 월급 두 배로 달라고 해.

희준은 자신의 아가미가 언제 생겼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가장 불편한 점이 뭐냐고 묻자 가끔 잠이 덜 깬 채로 거울을 보면 목에 칼 맞은 줄 알고 깜짝깜짝 놀라는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엠 카지노는 식당 TV에서 흘러나오던 드라마 재방영분 소리를 뚫고 깔깔 웃어 버렸다. 물론 엠 카지노도 알고 있었다. 스스로 알고 있는 자신은 아주 오랫동안 어젯밤의 날짜를 외우고 눈을 뜨자마자 거울에 목덜미를 비춰 보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걸. 하지만 원래 취했을 때는 모든 게 우스운 법이다. 나란히 밤을 새고 탄 첫차에서 내리며 희준은 또 보자, 하고 손을 휘적였다. 그렇잖아도 예민한 속에 멀미와 숙취까지 매단 엠 카지노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까닥였다.

결국 자취방으로 돌아와 조개구이를 시원하게 게워낸 엠 카지노가 세면대를 짚고 거울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한 쌍의 아가미가 엠 카지노를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엠 카지노는 10분 뒤에 수업이 시작한다는 알림을 무시하고 침대에 누웠다. 아가미가 체중에 눌리지 않도록 자세를 불편하게 고쳤다. 맑고 깨끗한 공기가 있는 엠 카지노의 방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었으나 함부로 다뤘다가 맞이할 미래가 두려웠다. 두껍게 쳐진 암막커튼이 밝아오는 먼동을 틀어막았다. 빛줄기의 잔해들만이 힘없이 유영하는 천장은 검게 일렁이는 밤바다와 닮아 있었다. 제 머리 위에 붙들린 가짜 바다를 멍하니 응시하며 엠 카지노는 자신의 기원에 대해 떠올렸다. 성당에 다니지만 딱히 하나님을 믿진 않는, 뼛속까지 공대생인 윤엠 카지노에게는 인간도 결국 운이 좋았던 단세포 생물의 최종 진화 버전일 뿐이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뇌의 전기 신호에 따라 결정된다는 걸 알게 되고부터는 하나님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런 제가 과학적 합리성의 첫 번째 반례가 될 줄이야. 아니지, 정희준 아가미가 먼저 생겼으니까 걔가 첫 번째인가. 졸음에 푹 절여진 생각이 싱거웠다.

 

“바다에서 사는 연습을 할 거야.”

 

희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희준은 대학생치고는 굉장히 보기 드물게 항상 눈동자가 반짝였다. 덕분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릴 해도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엠 카지노는 앞에 놓인 학식 오므라이스를 한 술 뜨려다 말고 희준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날 밤 바다에서 마주친 지 사흘 만에 '학식 같이 먹을래?'라는 담백한 연락을 받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면을 한 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꺼낼 말치고는 상당히 이례적인 첫 마디였다.

 

“너 공부 많이 힘드냐? 속세를 초월하게? 못다 이룬 철학도의 꿈을 이루려고?”

 

희준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유명인사였다. 기껏 3년 동안 이과 공부를 해 놓고 여름방학을 마치자마자 별안간 철학과에 가겠다고 선언한 탓이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학년부장실에 불려가 상담을 빙자한 꾸중을 들으면서도 희준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 몰래 원서를 썼다가 접수 마감 한 시간 전에 들켜 울며 겨자 먹기로 공대에 왔다는 소문은 엠 카지노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희준은 학적부 개인정보를 조작해 지난 학기에 기어이 받아낸 학사경고장을 친구네 자취방으로 보내 버렸다.

 

“아니. 바다로 가면 아가미를 더 잘 알게 될 것 같아서.”

 

엠 카지노는 뭐라고 반박하려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에서 아가미를 달고 온 것도 아니고 아가미로 바다 생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 그 이상한 끌림을 납득할 수 있었다. 엠 카지노는 막연한 충동에 사로잡혀 광역버스 막차를 탔던 그날 밤을 떠올리며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유명하다는 외과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종양 절제술 따위를 검색해 본 일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고 맞부딪혀야만 했다. 그 끝이 결별이든, 수용이든 대전제는 변하지 않았다.

 

“그럼 평생 거기서 살 거야?”

 

“모르지. 숨 쉬는 건 일단 해결해도 먹는 게 또 문제고. 포식자들도 조심해야 하니까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거야.”

 

“그럼 시뮬레이션 열심히 돌려야겠네.”

 

“응, 그래서 거기 있었던 거야.”

 

“언제부터?”

 

“으응… 한 봄부터.”

 

“지금까진 어땠는데. 생각보다 잘 돼?”

 

“아니. 아가미 적응하는 데도 꽤 오래 걸리고… ”

 

그래? 그럼 나도 같이 하자. 하나보단 둘이 낫겠지. 엠 카지노는 제가 뱉은 말에 스스로 놀라 토끼 눈이 됐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일에 뛰어드는 건 엠 카지노의 금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최선의 결정이란 것도 결국 합리성의 테제가 먹혀들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말이 안 되는 일에는 말이 안 되는 해결책이 필요했다. 희준도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씩 웃으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엠 카지노가 피슉, 하는 효과음을 넣으며 주먹을 맞부딪혔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가미와 함께하는 시간은 계속됐다. 엠 카지노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주연과 어울려 놀았고 희준과 마주치면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달라진 점이라면 목요일 밤 일정을 비운 채 옷가지와 세면도구가 든 가방을 메고 희준과 나란히 광역버스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버스에서 둘은 거의 대부분 말이 없었다. 희준은 버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동행자의 존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폰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엠 카지노는 그걸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둘 사이에는 언제나 어색한 대화 대신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 언젠가 한번은 이유 모를 호기심에 창밖을 바라보는 희준을 톡톡 쳐 이어폰을 나눠 낀 적이 있었다. 희준은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놀란 기색 없이 선뜻 이어폰 한쪽을 내밀었다. 음울한 밤의 해변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둘만의 애니메이션 오프닝이 울려퍼졌다. 희준은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왼손을 까닥이며 허공에 기타 코드를 잡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버스에서 뛰어내린 순간부터 희준은 다른 사람이 된 듯 거침없이 굴었다. 해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신발을 벗고 마른 발목부터 천천히 물에 담갔다. 물 속으로 들어가는 희준의 동작은 마치 그 행위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기묘하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몇 번의 버스를 탄 뒤에도 엠 카지노는 여전히 밤바다가 내키지 않았다. 첨벙첨벙 소리와 함께 희준의 발목을 감아오는 게 바닷물이 아니라 쩍 벌린 괴물의 아가리 같았다. 물속에 있는 희준은 땅 위에서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엠 카지노는 종종 돌아오지 않는 희준을 상상했다. 기어이 물속에서 밥 먹는 방법도 식인 상어를 피하는 방법도 알아낸 정희준. 야생에 방류한 돌고래처럼 그동안 고마웠어, 하고 뒤를 한 번 돌아본 뒤 사라지는 정희준. 엠 카지노는 희준을 기다리며 질척한 뻘 위에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돌고래를 그리다 아가미를 그렸다. 서해 바다의 다급한 밀물에 그림들은 금세 씻겨나갔다. 아가미로 숨을 쉬며 아주 오래 헤엄치던 희준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마다 엠 카지노는 매번 새롭게 안도했다. 그 사실을 희준이 영영 모르기를 바랐다.

하루는 용기를 내 희준을 따라 검은 물에 얼굴을 담가 보았다. 눈을 질끈 감고 아가미로 깊게 호흡하자 짭짤한 소금기가 폐 속을 파고들었다. 수십 배로 농축한 바닷바람을 맞는 기분이었다. 수영장 물에 비해 호흡이 훨씬 편했다. 희준의 말마따나 고향으로 돌아온 착각마저 들었다. 아마도 무심코 꾹 감고 있던 눈을 떠 버린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꺼풀 사이로 소금기가 파고드는 순간 찌릿한 통증이 안구를 관통하며 시야가 뿌옇게 점멸했다. 엠 카지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 소리에 조용히 물에 몸을 누이고 있던 희준이 황급히 다가왔다.

 

“괜찮아? 무슨 일 있어?”

 

“물속에서 눈 떴어. 아 따가워… 희준이 넌 눈 안 따갑냐?”

 

“따가워. 소금물 들어가면 쓰려. 아무래도 물안경이 필요해.”

 

“그럼, 바다에서 살면 평생 그거 끼고 살게?”

 

“아니, 단계적으로 훈련을 해야지.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면 나중에는 아팠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뎌지지 않을까.”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바다에서 살아야 돼?”

 

“아니? 그런 건 아냐. 그냥 궁금하잖아.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게. 안 무섭냐?”

 

음, …조금?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지 희준은 코끝을 찡그리며 잠시 골똘히 고민에 빠졌다.

 

“근데 뭐, 너랑 같이 있잖아. 어떻게든 되겠지.”

 

엠 카지노는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건 정희준과 윤엠 카지노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희준은 아마 옆에 엠 카지노가 없었더라도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을 터였다. 그건 자신감이나 무모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테제 같은 거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희준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희준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배반당하는 순간에 희준은 늘 태연했다. 그럴 수 있지. 아쉬운 거지. 다음에는 잘 되겠지. 희준에게는 아가미조차도 불안을 불러들일 이유가 되지 않았다. 뭐, 그냥 있으면 있는 대로 사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준이 자신을 이유로 댔다는 게 엠 카지노는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하지만, 하지만.

엠 카지노는 제가 따라잡지 못할 희준의 세상이 부러웠다. 자신도 거침없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이곳을 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마음껏 유영하고 싶었다. 정희준은 언젠가 아가미를 달고 바다로 가겠지. 그건 뭍에 남은 엠 카지노가 습관적으로 목덜미를 쓰다듬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 더는 없을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상상은 엠 카지노를 불안하게 한다. 물을 들이키지 못하는 아가미는 틀림없이 불행할 것이다. 머리 아래에 불행을 대롱대롱 매달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엠 카지노는 자신이 겁먹는 방법만을 배우게 될까 봐 두려웠다. 소금기에 문대진 눈시울이 아직도 쓰렸다.

 

“근데 있잖아, 왜 하필 아가미일까?”

카페에 마주앉아 음료를 홀짝이던 엠 카지노가 문득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희준이 음, 하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차피 말이 안 될 거면 선택지가 너무 많잖아. 뿔이 달린다던가, 날개가 돋는다던가, 입에서 불 뿜는 기능이 생긴다던가…”

 

오, 입에서 불 뿜는 거 좀 멋있겠다. 가랏, 파이리! 엠 카지노가 볼을 부풀려 화염을 뿜어내는 시늉을 하자 희준이 상체를 젖히고 깔깔 웃었다. 희준은 평소의 조용한 모습과는 딴판으로 웃음소리가 시원하게 컸다.

 

“그건 너무 멋있잖아.”

 

한참을 웃고 나서 희준이 대답했다. 애니도 주인공이 너무 먼치킨이면 재미없으니까.

 

“그럼 우린 뭐,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 고독한 주인공이야? 그런 건 내가 할 때 말고 볼 때나 재밌는데.”

 

“비밀을 말할 수 있으면 비밀이 아니잖아. 그건 낙인이지.”

 

이번에는 엠 카지노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아가미의 존재는 일주일의 절반을 붙어 다니는 주연은 물론 이십여 년을 부대끼며 살아온 부모님과 형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었다. 말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도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들게 했다. 때로는 차라리 아가미를 시원하게 까놓고 별종이든 실험체든 처지에 걸맞는 취급을 받고 싶었다. 외모 준수하고 성적 우수하고 품행 단정한 윤엠 카지노는 지금껏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엠 카지노를 좋아할 이유가 하나쯤 있었고 그 틈을 조용히 살피다가 비집고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부여된 벽 너머의 삶은 이미 숨구멍 하나 없이 매끈하게 완결되어 있었다. 가슴 깊은 곳이 턱 막혀왔다. 스스로를 속여서라도 도망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럼 나 하고 싶은 거 있어.”

 

“뭔데?”

 

엠 카지노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뱉어냈다.

 

“횟집 수족관 있잖아. 거기 들어가 보는 거.”

 

엠 카지노는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말이 얼마나 괴상하게 들릴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왜 학교 수영장도 동네 천변도 아닌 횟집 수족관이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고 싶어서였다. 식당가를 지나치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수조를 마주할 때마다 엠 카지노는 습관적으로 배가 갈리고 내장이 드러난 물고기를 떠올렸다. 오래전 집에서 키웠던 금붕어와 달리 탁하게 비어 있는 그들의 눈동자에서 엠 카지노는 본능적으로 전해지는 절망을 느꼈다. 엠 카지노에게는 평생 아무도 모르는 아가미를 지니고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나날들이 곧 절망이었다. 다가올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곳에 갇혀 있는 물고기들의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보란 듯이 답답한 수족관 속에서 빠져나가며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건 비정상의 세계에서 정상의 세계로 건너가는, 눈앞에 놓인 절망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일종의 도망이었다.

 

“정확히 언제 들어가고 싶은 거야. 물고기도 있을 때, 물만 있을 때, 아님 아무것도 없을 때?”

 

잔뜩 얼굴을 붉힌 저와는 달리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묻는 희준에 엠 카지노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엠 카지노는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을 얘기를 희준에게만큼은 꺼낼 수 있는 건 둘이 나란히 아가미를 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만 있을 때.”

 

“왜?”

 

“도망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서. 우린 이미 여기서 빠져나갈 수가 없잖아. 자기최면 한번 걸어 보는 거지.”

 

엠 카지노가 말을 마치며 제 아가미를 톡톡 두드려 보였다.

돌아온 목요일에는 바다 대신 새벽 장사를 하지 않는 횟집을 찾아갔다. 제아무리 횟집 수조치고 크다지만 성인 남자 둘을 담기에는 역시 턱도 없이 비좁았다. 엠 카지노와 희준이 잔뜩 몸을 구긴 채 희미한 비린내가 일렁이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바다처럼 짭짤한 물이었다. 본능적으로 눈이 감겼다. 코앞에서 제 손을 더듬어 찾는 희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엠 카지노는 잠깐 멈칫하다 손을 뻗었다. 손가락 새로 말랑한 물안경 줄이 들어왔다. 뭐야, 정희준. 언제 챙겼어. 목소리 대신 기포 방울만이 보글거리며 새어나왔다. 엠 카지노는 눈을 감은 채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더듬어 물안경을 꼈다. 플라스틱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낮은 해상도로 일렁였다. 엠 카지노가 천천히 수면 아래로 다시 고개를 집어넣었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물 속의 희준은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엠 카지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정희준이 바다로 들어가 영영 나오지 않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엠 카지노는 그 전에 자신이 희준의 바다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엄마가 해 줬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을 이제야 간절히 실천하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겁쟁이 윤엠 카지노에게는 누군가를 비추는 쪽보다 눈을 감기는 쪽이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그래도 정희준이 끝끝내 눈을 뜨고야 만다면, 엠 카지노는 희준의 숨이 담기는 곳이 폐이든 아가미이든 어디서나 자유롭기를 바랐다.

엠 카지노는 잠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물속은 태초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간 듯 비좁고 편안했다. 아가미와 함께 살아갈 날들이 다시금 덜컥 두려워졌다. 숨을 멈추고 싶었다. 마음만 먹으면 접시 물에도 코 박고 죽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하지만 엠 카지노와 희준에게는 아가미가 있다. 제아무리 폐가 쪼그라들고 눈동자가 뒤로 넘어갈 때까지 숨을 참아도 인간의 강력한 생존 본능은 끝내 몸뚱이를 삶의 영역으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아가미를 갖는다는 건 물속에서 숨을 멈출 능력을 잃어버리는 제로섬 게임이었다. 퇴로가 틀어막힌 이상 무슨 짓을 해서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도망치는 기분을 느끼려고 기어들어온 곳에서 엠 카지노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엠 카지노는 희준의 세계를 따라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감한다. 혼자는 여전히 잘 상상되지 않고 그래서 무섭다. 하지만 이제 희준의 기분만큼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망칠 수 없다면 도망칠 수 없는 채로 살아가면 된다. 퇴로가 없기 때문에 어떤 길을 골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므로.

엠 카지노가 몸을 일으켰다. 기척을 느낀 희준도 이내 뒤따라 몸을 세웠다. 여전히 발을 수조 바닥에 디딘 둘이 서로를 마주보며 동시에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짠물을 머금고 있던 두 쌍의 아가미가 부드럽게 일렁였다. 희준이 손을 들어 엠 카지노의 아가미를 슬쩍 어루만졌다. 경계 너머에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위로였다.

희준이 엉망으로 젖은 머리칼을 정성스레 꼭꼭 눌러 짰다. 비린내 나는 물이 코피처럼 점점이 떨어졌다. 엠 카지노가 물을 잔뜩 머금은 티셔츠를 비틀며 합세하자 아스팔트 바닥이 금세 짙은 색으로 물들었다.

 

“어땠어?”

 

“실패했어.”

 

“왜?”

 

“도망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는데 결국 그럴 수가 없더라고.”

 

엠 카지노가 아가미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희준이 그래? 하며 따라 웃었다.

 

“근데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응, 그치. 일단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야.”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자신들이 방금 빠져나온 수조를 바라보았다. 반나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 발로 걸어 들어가리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공간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의 어떻게든이 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에 가자.”

 

“이러고?”

 

“우리 집 와. 내 옷 빌려줄게.”

 

진짜 바보인가. 쫄딱 젖은 채로 걸어가야 되는 건 네 집이나 내 집이나 똑같고, 내 집에는 내 옷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입속으로 삼키며 엠 카지노는 희준과 발맞춰 걸었다.

 

“근데 너 옷 입기 안 불편하냐? 나 요즘 티 입을 때마다 아가미 때문에 자꾸 목 늘어나서 짜증나던데.”

 

“나도. 그럴 땐 그냥 그런지룩이라고 우기면 돼.”

 

아, 역시 정희준. 엠 카지노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희준의 새된 웃음소리가 합세해 거리를 울렸다. 검게 일렁이는 밤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꼭 바다를 들이마시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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