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이 달린다

고진훈

 

한 청년이 달린다. 아찔하게 가파른 언덕을 달려 내려간다. 엄청나게 빠른데도 청년의 자세는 흔들리지 않는다. 대신 청년의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안에서부터 끓어올라 당장이라도 무언가 내뱉어야만 할 것 같다. 씨발, 이라고 소리친다. 너무 크게 숨을 내쉬어서 호흡이 꼬인다. 속도를 늦춘다. 청년의 얼굴은 슬퍼진다.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다. 청년이 멈춰 섰다. 고인 눈물이 떨어지려는 순간, 청년이 거북이로 변해버린다. 그렇게 된 것이다.

*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던 밤이었다. 10시에 영업을 마감하고 카페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이십 분 동안 열세 개의 정거장을 지나친 후 내려 걸으면, 가파른 언덕 하나가 나온다. 크게 난 도로 양옆으로 낮은 층의 빌라가 빽빽하게 세워져 있다. 언덕 아래로는 많이 낡은 건물들이 다 시들어가는 나무처럼 서 있고, 위쪽으로는 그래도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듯한 건물들이 잡초처럼 자라 있다. 드문드문 비추는 가로등 빛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언덕 끝에 다다르면 왼쪽으로 꺾는다.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나와 카지노 게임이 사는 빌라가 보인다.

그날, 건물 앞에 무언가 있는 듯했다. 가로등이 없어 제대로 알아볼 순 없었지만 어둠 속에 어떤 형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것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미지의 두려움을 느끼며 핸드폰 플래시를 비췄을 때, 거기에는 거북이 한 마리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빛에 놀란 듯 거북이는 눈을 끔뻑거렸다. 다시 생각해도 기묘한 조우였다.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모른 채 그것만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거북이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가 몇 발짝 디뎠을 때, 그 아래 있던 물체가 보였다. 핸드폰이었다.

누구의 핸드폰이지, 하던 찰나에 화면에 빛이 들어왔다. 전화가 온 것이었다. 진동이 작게 울려댔다. ‘어머니’라고 적힌 걸 보면 주인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듯하였다. 전화가 끊기자 곧바로 전화가 다시 왔다. 급한 일인 것 같았다.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했지만, 역시 말기로 했다. 동네가 흉흉하다 보니 남의 핸드폰 주웠다가 무슨 일에 휘말릴지 몰랐다. 그냥 집에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핸드폰 배경 화면이 켜졌다.

거기에는 되게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카지노 게임, 나의 친구이자 룸메이트. 청소년 육상선수 출신인 카지노 게임이 러닝을 하고 나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건 카지노 게임의 배경 화면이 맞았다. 그렇다면 저건 카지노 게임이 떨어뜨린 핸드폰이다.

카지노 게임의 핸드폰을 품듯이 앉아 있던 거북이는 아까부터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어딘가 신비롭고 의미심장해서 마치 뜻을 헤아릴 수 없는 현자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거북이를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북이는 스마트폰을 지키려는 듯 품고 있었고, 나를 보고는 비켜주었다. 그렇다면 혹시 거북이는 누군가 스마트폰을 발견해 주기를 기다려온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핸드폰을 집었다. 카지노 게임의 스마트폰이 확실했다. 그리고 이 신비로운 거북이를 품에 안았다. 거북이는 자연스레 내게 안겼다. 밤이라 그런지 몸이 찼다. 그렇게 내가 거북이를 처음 만나 집으로 들어간 밤, 카지노 게임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카지노 게임은 집에 오지 않았다. 핸드폰도 챙기지 않은 채로 밖에서 무얼 하는 걸까. 막연하게 걱정되었지만, 경찰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카지노 게임이 며칠 안으로 무탈하게 돌아오리라 믿었으며, 생각할수록 카지노 게임의 가출에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출의 어떤 단서라도 찾기 위해 눈을 감았고, 마지막으로 카지노 게임을 목격했던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영했다.

카지노 게임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그날의 낮이었다. 그때 나는 영화과 후배가 배우를 모집한다며 보내준 시나리오를 읽고 있었다. 시나리오는 재밌지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촬영에 시간을 많이 낼 수가 없었기에, 잠깐 나오는 조연이라도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진 참이었다.

카지노 게임은 옆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핸드폰 벨이 울렸고, 그는 나가려고 일어서며 전화를 받았다. 방이 넓지 않으니 전화는 밖에서 하기로 입주하는 날에 약속했었다. 마침 그때 후배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해서 나는 컴퓨터를 들여다봤던 것 같다.

 

이때부터는 모두 소리로만 기억된다.

 

어, 엄마.

 

얼마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아마 카지노 게임의 어머니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아이, 씨발. 왜 또 그러는데.

 

그 말은 운동 경기에서 시작할 때 들리는 짧은 총성 같았다. 그 후 문을 세게 닫는 소리가 있었고,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거센 힘으로 닫힌 문만 바라보았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카지노 게임의 모습이다. 나는 그렇게 강렬한 기세로 돌진하듯 뛰쳐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기세가 며칠도 못 가고 사그라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분명 카지노 게임은 돌아오리라 믿었다.

*

카지노 게임의 어머니는 카지노 게임에게 무슨 말을 한 걸까. 평소 카지노 게임은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친구인 나에게도 욕을 쓰지 않는 카지노 게임이 가족에게 욕설을 뱉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카지노 게임의 어머니와 관련된 힌트를 찾은 건 카지노 게임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 5일째가 되었을 때였다.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카지노 게임을 생각하는 일뿐이었다. 카지노 게임의 가족관계, 개인적 취향, 언어 습관, 향후 목표 등등. 나는 바빴다. 카지노 게임이 집에 돌아오든 아니든 내일은 내일의 아르바이트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 아르바이트는 나가야 했고, 졸업은 해야 하니 영화 세미나에 결석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니 그저 원룸에서 일터인 영화관으로, 다른 일터인 카페로, 학교로, 다시 원룸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 가며 계속 골똘히 생각해 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카지노 게임이 그리워질 때면 투애니원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컴백홈. 캔 유 컴백홈. 차가운 세상 속에 날 버리지 말고 네 곁으로.

카지노 게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카지노 게임이 사라진 날 주운 핸드폰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 호기심 어린 충동을 느꼈고, 어쩌면 그 안에 지금 상황에 관련된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고 어엿이 살아있을 사람의 개인 정보를 마음대로 보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라는 생각이 맞섰다. 그렇게 고민만 하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5일이나 지난 것이다.

그날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아르바이트를 나가지 않는 하루였다. 거북이 수조 청소용품을 중고 거래로 구매한 후 집에 돌아와 쉬는 중이었다. 카지노 게임이 사라진 날 들여온 거북이는 급한 대로 중고 수조를 사서 키우고 있었다. 먹고 사는 데만 아껴 써도 부족한 돈을 거북이에게 쓰는 게 아깝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거북이를 유기한다는 결정은 도무지 내릴 수가 없었다. 이어달리기에서 배턴 터치하듯 카지노 게임 대신 나타난 거북이와의 만남이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이 없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는 혼자 쓰니 방이 꽤 살만하구나,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의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어머니’로부터의 전화였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카지노 게임이 돌아오지 않은 5일 동안 ‘어머니’는 수시로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 소리가 수십 통가량 울리다가, 메시지 알림으로 진동이 울렸다. 그것도 멈추면 카카오톡 알림 소리가 다시 이 좁은 방을 채웠다. 내가 방에 없을 때도 계속해 왔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전화를 받거나 끊거나 답장하지 않았다. 건드리지도 않았다. 카지노 게임이 곧 돌아오면 전화를 받든 어떻게 하든 해결하리라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카지노 게임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욕설이 마음에 걸렸다. 카지노 게임의 엄마가 카지노 게임의 가출과 모종의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참을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뿐인 휴식이었다.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알림이라도 꺼버리려고 했다. 그렇게 핸드폰 화면을 켰을 때 온 문자를 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카지노 게임아 엄마 좀 살려주라 엄마 진짜 돈이없다 굴머죽겠다 정말 화투 그만칠테니까 제발 돈보내줘 돈안보내주면 조폭새끼들이나죽인단다 장기때갈거란다 정말 엄마죽일쎔이냐

 

가까스로 누르고 있던 호기심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쌓여있던 문자와 카카오톡을 모조리 읽고 또 읽었다.

카지노 게임의 엄마는 애원과 협박을 오가는 태도를 보였다. 제발 자기 좀 살려달라며 애원하다가도 분노에 차서 아들을 욕하고 협박했다.

 

야이개새끼야 너 인생그렇게살지마라 패륜아새끼 낳아주고키워준 감사함도모르는새끼 너같은걸 아들로 키운내가 쪽빨린다 아들돈으로화투좀친게 그렇게잘못이냐 네아빠뒤지고혼자고생해서키웟는데 이정도도 못하냐내가 너지금 돈안주면 너죽고나죽고다 내가너죽이고지옥갈거다

 

그렇게 욕하다가도 다음날이면 다시 말투가 은근해진다.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를 이렇게 죽일 수는 없지 않냐. 빚은 오천이 전부야. 딱 그 정도만 갚아주면 돼.

 

딱 그 정도만.

 

딱 그 정도를 못 모아서 당신 아들이 좁아터진 원룸에 둘이서 살고 있으며,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세 시간짜리 쪼개기 알바를 하루에 두 개씩 한다. 고깃집 사장님 눈에 들어보려고 시키지 않아도 단골손님들 고기를 구워주며, 2호점 매니저 자리를 얻어보려고 애처롭게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에서 공부하고 미래가 있는 직장에서 일하고 여자 친구를 사귀면서 사랑을 배워나가고, 그러지를 못한다. 그걸 당신은 모른다. 문자를 다 읽고 나는 중얼거린다.

 

진짜 씨발이다.

*

그날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카지노 게임의 마지막 장면이 다시 상영되었다. 이제는 카지노 게임이 전화로 어떤 말을 들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카지노 게임아. 엄마 빚 한 번만 갚아줘라 제발. 좀.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엄마 이거 절대 다시는 안 할게. 아저씨들이 엄마 죽인대 카지노 게임아. 너 이렇게 엄마 죽일 거니.

문을 닫는 소리에 이어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다음으로 내가 만들어낸 장면이 이어진다. 카지노 게임은 뛰었을 것이다. 육상선수 출신이니까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렸을 것이다.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어머니를 미워하며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을 것이다. 씨발, 이라고 크게 소리쳤을 수도 있다. 달릴수록 더 빨라지는 압도적인 가속도를 느끼며 아찔하게 가파른 언덕을 거침없이 내려가는 카지노 게임의 모습을 나는 머릿속으로 상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달린 카지노 게임이 어디에 도착했으며 무얼 하고 있는지 그려지지 않았다.

*

카지노 게임이 돌아오지 않은 지 10일이 넘었다. 카지노 게임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카지노 게임의 엄마 말고 카지노 게임이 일하는 고깃집 사장에게서도 몇 번 전화가 걸려 왔던 것 같다. 부재중 기록이 며칠에 걸쳐 남아 있었다. 카지노 게임이 연락도 없이 가게에 나오지 않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사장이 직접 연락하는 데도 일절 반응이 없자, 사장은 며칠 후에 문자를 딱 한 마디 보냈다. 다신 오지 마라.

카지노 게임의 엄마는 꾸준했다. 문자를 모조리 읽은 후로 그의 협박과 애원은 더 간절하고 심해졌다. 읽었으니 가망이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카지노 게임 대신 내가 연락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 지금 이 폰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당신 아들이 아니다. 당신 아들은 가출했다. 돌아올 기미도 없다. 아들을 못 찾으면 당신에게는 가망이 없다. 그러니 멍청하게 연락만 보내는 짓 그만 좀 해라. 기도나 해라. 아들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제발. 실제로 보내지는 않았다. 저 지독한 여자와 얽매여서 좋을 게 없을 것으로 보였다.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돈 빌려달라고 애원할 사람이었다.

가출이 일주일을 넘어가는데도 실종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나는 실종된 카지노 게임보다는 내 눈에 담겨있던 카지노 게임을 자주 생각했다. 동아리에서 배우로 처음 만났던 카지노 게임, 달리기를 마치고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온 카지노 게임, 늦게 돌아오면 잠들어 있는 내가 깰까 봐 조심조심 씻던 카지노 게임, 가끔 시를 쓰던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을 향한 나의 감정은 걱정이 아니었다. 그리움이다. 나는 카지노 게임을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카지노 게임의 모습을 퍼즐 조각처럼 맞추기를 자주 되풀이했다. 그러기에도 바빴다.

그렇게 떠오른 것 중 하나는 내가 처음으로 카지노 게임과 같이 찍었던 영화였다. 카지노 게임과 나는 같은 동아리에 속해 있으면서도 일정이 맞지 않아 카지노 게임이 들어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그때 동아리장이었던 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겠다고 선언했고 나는 감독의 부탁으로 조연출을 맡았다. 카지노 게임은 그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그 영화는 가난하지만 유망한 육상선수의 도전기를 다루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의 유년 시절에서 아이디어를 받아 작품을 썼다고 감독은 말했다. 내가 조연출로 참여했지만 그 영화는 졸작이었다. 코믹과 감동과 다큐를 애매하게 뒤섞어놓아서 그 무엇도 못 된 작품이었다. 제작을 마치고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은 몇 번이고 다시 볼 만큼 좋아했다. 결국 주인공은 대회에서 3위를 하여 동메달을 따게 된다. 기쁨으로 가득 찬 주인공이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는 그의 얼굴, 다리 움직임, 옆모습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이 달려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영화는 마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지노 게임은 진정으로 행복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워 보였다. 카지노 게임에 관해서라면 그 자유로움을 몇 번이고 떠올리게 되었다.

카지노 게임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잘 실감 나지 않았다. 나는 카지노 게임이 일주일도 넘게 집에 돌아오지 않고 방황하고 있다는, 그러다가 큰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갈 때면 언제든 능청스럽게 나를 반겨줄 것만 같았다. 그런 애가 도망쳤다거나, 큰일이 났다거나, 죽었다거나, 하는 끔찍한 일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비극과 어울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카지노 게임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카지노 게임의 행방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거북이 물을 갈아주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결과 2주에 한 번 정도 새로운 물로 갈아주고 약도 쳐야 했다. 거북이와의 생활은 나날이 적응되고 만족스러워졌다. 초기 비용이 뼈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관리하는 데는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거북이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이나 고요한 눈빛을 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유독 고된 날이 있으면 수조 앞에서 30분도 넘게 ‘거북이 멍’을 때리곤 했다. 거북이를 보고 있으면 잡생각이 사라졌다. 그렇게 거북이를 돌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은 일상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물을 갈아주고 나서도 거북이멍을 때렸다. 그러면서 거북이의 눈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거북이도 나를 알아보는지 눈을 맞추었다. 그 무심하고 차분한 눈이 카지노 게임을 떠올리게 했다. 카지노 게임도 비슷한 눈을 가졌다. 크지 않고 옆으로 늘어진 눈, 보고 있자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가벼운 미소를 짓게 해주는 눈이었다. 나는 거북이에게 전용 사료를 먹이며, 지금까지의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했다.

카지노 게임은 이유를 알 수 없이 가출했고 지금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카지노 게임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 나는 집 앞에서 거북이를 만났고 그 거북이는 카지노 게임의 휴대전화를 깔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거북이는 카지노 게임과 닮은 눈을 가졌다. 카지노 게임은 이유 없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죽거나 실종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카지노 게임의 행방은… 이라며 생각이 흐려질 때쯤, 어두운 방에 불이 켜지듯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

카지노 게임의 행방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었다.

*

거북이의 울퉁불퉁한 등껍질을 어루만지다가 방바닥에 누웠다. 방이 좁아서 다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데도 일단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고, 미완이었던 장면을 채워 다시 상영했다.

한 청년이 달린다. 아찔하게 가파른 언덕을 달려 내려간다. 엄청나게 빠른데도 그 청년의 자세는 흔들리지 않는다. 대신 청년의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안에서부터 끓어올라 당장이라도 무언가 내뱉어야만 할 것 같다. 씨발, 이라고 소리친다. 너무 크게 숨을 내쉬어서 호흡이 꼬인다. 속도를 늦춘다. 청년의 얼굴은 슬퍼진다.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다. 청년이 멈춰 섰고, 고인 눈물이 떨어지려는 순간, 청년이 거북이로 변해버린다.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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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카지노 게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린 후로 나는 더 거북이를 열심히 보살폈다. 비싸도 질 좋은 사료를 사서 먹였고,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청소 물고기도 넣어줬다. 그리고 매일 집에 들어와 씻고 밥을 먹은 후 30분이라도 카지노 게임과 시간을 보냈다. 내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카지노 게임이 나를 지긋이 들어주는 쪽에 가까웠지만. 나는 온갖 이야기를 해댔다. 알바를 하며 만난 진상 이야기, 사장이 임금을 체불해서 고소를 진행했다는 친구 이야기, 배우가 촬영 중에 잠적해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소연하는 아는 감독 이야기까지. 사람 카지노 게임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거북이 카지노 게임에게는 말했다. 이를테면 가족 이야기. 아빠가 낮에 전화가 왔는데 뭐라는 줄 알아? 얼른 직장이나 구하래. 그래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래…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설령 무슨 말을 하다 딴 길로 새도, 카지노 게임은 나의 눈을 응시하며 참을성 있게 잘 들어주었다.

그러나 단지 그가 내 친구 카지노 게임일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보살핀 것은 아니었다. 친구로서의 호감이나 애정, 나는 그보다 더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동정심. 청소년 시절 육상 선수를 할 만큼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카지노 게임이 느릿느릿한 거북이가 되었다는 건 참 운명이 야속한 일이다. 달리기를 좋아해서 자주 거리를 뛰어다니던 카지노 게임이 앞으로는 기어다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했다. 거북이가 되었으니 카지노 게임은 얼마나 답답할까. 카지노 게임이 다시 뛸 수 있게 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깨끗한 물에서 헤엄치며 건강하기라도 바랄 뿐이다.

물론 이런 말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이라면 내 눈에 어려 있는 동정심까지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카지노 게임은 줄곧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카지노 게임의 평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눈과 시선을 주고받다 보면 하고 싶은 말들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질문들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참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나는 카지노 게임에게 묻고 싶었다. 카지노 게임의 목소리로 답을 듣고 싶었다. 카지노 게임아 지금 어때? 괜찮아? 거북이로서의 새로운 삶은 살 만해? 너는 종종 말했지. 이건 네가 바라온 삶이 아니라고. 애매한 재능 때문에 인생 꼬였다고. 혹시 그래서 변한 거야? 나 몰래 간절히 매일매일 기도해서 있는지도 모르겠는 신이 네 기도를 이뤄준 거야?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달리기를, 네 재능을 스스로 버린 거 아니지?

*

카지노 게임의 가출이 2주를 넘어가는 때였다. 학과 사람들과 영화 촬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나는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와서 이미 어느 정도 지쳐 있는 상태였고, 주연 배우가 지각을 하는 바람에 촬영장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처져 있었다. 주연이 도착할 때까지 거기 있는 사람 모두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니 맥 빠지는 일이었다. 주연 배우가 늦는 게 말이 돼? 배우가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지.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는 게 뭐냐고. 그런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 대본을 읽고 있었는데 전화 진동이 울렸다.

 

여보세요, 서울관악경찰서 실종수사팀 박형민 형사입니다. 신희준씨 되시죠.

 

간단히 여쭤볼 게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변카지노 게임씨 아시나요? 거주 기록 조회해보면 같이 사는 걸로 나오는데

 

아아 변카지노 게임씨랑 룸메이트시구나. 최근에 변카지노 게임씨 보셨나요?

 

변카지노 게임씨 실종 신고가 들어와서 저희도 확인을 해봐야 해요. 변카지노 게임씨 최근에 못 보신 걸까요?

 

그러면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나요?

 

이 주 정도… 마지막으로 보셨을 때 특이 사항 같은 거는요?

 

아 그러면 만나서 말씀 주시고. 그 댁에 들려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자택이신가요?

 

그러시구나. 한 시간 정도 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으세요?

 

네. 한 시간 후에 가겠습니다. 아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왜 지금까지 실종 신고를 안 하셨어요?

*

전화를 마치고 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감독에게는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그런데 혹시 다음에 찍어도 되겠냐고 부탁했다. 감독은 잠깐 고민해 보더니 그러라고 했다. 애초에 내가 나오는 부분이 많지 않기에 나중에 촬영해도 큰 무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했다. 가방을 챙겨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주연을 만났다. 그는 지각을 했음에도 딱히 급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오니 이제 촬영을 시작할 것이다. 나 없이도 촬영은 잘 진행될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버스로 갈아타서 다시 몇 정거장을 가고 언덕을 올랐다. 왼쪽으로 꺾으면 빌라가 나올 것이었다. 약속한 한 시간이 다 되어갔다. 형사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지노 게임의 핸드폰이 방에 있다는 점이 오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가능하면 카지노 게임의 핸드폰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의 핸드폰을 내가 대신 확인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형사가 나를 의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어느 정도는 의심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리고 카지노 게임이 있는 수조를 다른 곳으로, 옥상으로라도 옮겨놓고 싶었다. 그들이 카지노 게임을 눈치채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혹시라도 눈치채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빌라 앞으로 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두 사람이었다. 먼저 가죽 재킷과 짙은 청색 바지를 입은, 3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이 있었다. 그는 목에 공무원증을 매고 있었다. 아마 박형민 형사일 것이다. 그 옆에는 파마머리를 한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키 작은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언덕을 오르느라 피곤하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여자를 마주한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여자는 카지노 게임의 엄마다.

카지노 게임의 실종을 누가 신고한 걸까? 핸드폰에만 사로잡혀 그런 질문은 떠올려보지 않았다. 형사와 나 이외에 이 사건에 개입하고 있는 인물이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만큼이나 카지노 게임을 간절하게 만나고 싶어하는 저 여자가 실종 신고를 할 수도 있다는 걸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의심을 받고 싶진 않았기에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형사도 여자도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사가 방을 돌아보았다. 옷장을 열고 책상과 서랍을 뒤졌다. 거북이를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그것이 약간 신경 쓰이긴 했지만 곧바로 그는 눈을 뗐다. 형사가 탐색하는 동안 나는 여자의 얼굴을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여자는 평범해 보였다. 동네 시장에 가면 어디선가 나물을 사며 장을 보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저 얼굴이구나. 아들에게 돈을 받아 도박을 하고 빚을 지고 빚을 갚아달라고 애원하고 수틀리면 욕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저렇구나. 여자의 메시지를 본 이후로 몇 번 눈을 감고 그녀의 얼굴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디테일은 매번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녀의 얼굴은 사납고 탐욕적이고 부도덕한 사람들로 흔히 재현되는 모습의 눈매와 입꼬리와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그녀의 얼굴은 달랐다. 그녀는 무기력하고 무심해 보였다.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보다는 이게 악인지 아닌지 판단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사람 같아 보였다. 혹은 악을 알긴 하지만 그걸 교정할 여력이나 의지가 더는 없는 사람 같았다. 여자가 카지노 게임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아는 카지노 게임은 저런 얼굴이 아니었다. 카지노 게임은 무기력하지도 무심하지도 않다. 그는 삶의 여러 굴곡에서 실패를 겪으면서도 자신이 품고 있는 가능성을 꺾지 않았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눈빛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카지노 게임에게서 그런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형사가 말을 꺼냈다.

 

신희준씨. 침대는 두 분이 같이 쓰시는 건가요?

 

네. 원룸이라 침대를 두 개 놓을 자리는 없어서…

 

침대 좀 확인해 봐도 괜찮죠?

 

안 돼요, 확인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베개 밑에 핸드폰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형사가 왜죠? 라고 되물었을 때 답할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 우물쭈물했다. 형사는 얼른 답하라는 듯이 눈짓으로 보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네, 라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형사는 꼼꼼하게 침대를 살폈다. 이불도 다 털어보았고 당연히 베게 아래도 살폈다. 거기에는 역시나 카지노 게임의 핸드폰이 발견되었다. 여자는 핸드폰 배경 화면을 보고 적잖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들이에요, 아들. 이걸 왜 숨겨뒀지? 그녀는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았다. 그녀에게 나는 이미 카지노 게임의 실종에 가담한 사람인 듯했다. 형사는 그렇게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신희준씨 핸드폰 여기 있다는 거 알고 계셨어요?

 

나는 머뭇거리다가 그렇다고 답했다.

 

변카지노 게임씨가 여기 둔 건가요, 아니면 신희준씨가 여기에 숨겨둔 건가요?

 

형사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목소리는 건조하고 일정한 톤을 유지했다. 내가 재차 머뭇거려도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신희준씨.

 

그냥 둔 거뿐이에요. 숨긴 거 아니고. 하도 전화가 많이 오니까 시끄러워서.

 

야, 네가 왜 내 아들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 너 뭔데. 너 우리 아들한테 무슨 짓했니?

 

여자는 흥분하여 공격적인 말투로 내게 쏘아붙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화가 나 보였다. 그녀에게 정말로 모성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정말 자기 아들이 나 때문에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그 사라짐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진정으로 아들을 향한 것인지,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지는 분간하기 쉽지 않았다.

 

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냥 집 앞에 떨어져 있어서 챙겼을 뿐이에요.

 

나한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쯤은 알았다. 형사와 여자 모두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억울했다. 나는 카지노 게임의 실종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내게 의심스러운 건 저 여자였다. 내가 범인이라는 듯이 몰고 가는 저 여자와 통화한 후로 카지노 게임은 사라졌다.

 

형사님. 쟤가 우리 아들 어떻게 하고 핸드폰만 챙겨온 게 아닐까요?

 

어머니 진정하시고요. 신희준씨. 통화할 때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실종 신고를 안 하셨습니까. 사라진 지 이 주일이 지났는데.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지켰다.

 

신희준씨. 답 안 하실 겁니까?

 

형사는 계속해서 머뭇거리는 내게 답답했을 것이다. 여자는 이러한 침묵이 내게 죄가 있음을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 또한 답답한 심정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중 대부분의 말을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제가 실종 신고를 안 하냐고요? 형사님. 저는 애초에 실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건 가출이라고 믿었어요. 잠시 집을 떠났을 뿐이고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전제하는, 가출 말이에요. 카지노 게임이가 분명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굳이 신고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저는 알았어요. 카지노 게임이는 애초에 가출을 한 적이 없었다는 걸. 단지 카지노 게임이가 거북이가 되었을 뿐이라고요. 카지노 게임이와 저는 계속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걸 제가 몰랐을 뿐이죠. 그러니까 카지노 게임은 실종되지 않았어요. 여기에 딱딱한 등껍질을 지고 천천히 걸어 다니며 누구보다도 분명한 자태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말에 동의하실 수 없으시겠죠. 이건 오로지 저만이 알 수 있어요. 웃을 때면 더 옆으로 늘어지는 눈매, 카지노 게임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에게서 느껴졌던 기세, 거북이가 카지노 게임의 핸드폰을 깔고 앉아 있던 상황. 그 모든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진실이니까요.

이 모든 말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가 요새 바쁘기도 했고, 카지노 게임이 돌아올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형사는 차가운 표정을 유지했고, 여자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이 주 간 안 보였는데 어떻게 저렇게 태평하게 생각할 수 있냐고 표정으로 따져 묻는 것 같았다. 두 쪽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점점 기가 죽었다. 형사의 눈을 피한 나는 카지노 게임과 눈이 마주쳤다. 카지노 게임은 내 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제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지노 게임이를 믿었던 것 같아요.

*

형사는 핸드폰이랑 카지노 게임의 노트와 몇 가지 물품, 그리고 옷가지들을 챙겼다. 여자는 자신이 아들 핸드폰을 챙기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형사는 거절했다. 문자 내용이 생각났는지 여자는 초조해 보였다. 형사는 나중에 정식으로 수색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고지했다.

 

신희준씨, 며칠 후에 경찰서 방문하셔서 진술 조사 좀 해주세요. 룸메이트는 중요한 참고인이에요. 연락드릴게요.

 

이제 조사가 마무리되는 듯했는데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근데 이 좁은 방에서 거북이를 키우네. 우리 아들이랑 같이 키운 건가? 우리 아들이 어릴 적에 거북이 좋아하긴 했는데.

 

아, 최근에 어디서 데려왔어요.

 

카지노 게임이랑 같이?

 

아… 네 뭐.

 

얼결에 거짓말을 했다. 관심이 거북이로 쏠린 게 신경 쓰였다. 여자라면 카지노 게임임을 알아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여자는 거북이를 제법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자기 아들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형사는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카지노 게임도 여자를 알아봤겠지. 카지노 게임은 여자를 보고 싶었을까. 그렇진 않은 듯했다. 카지노 게임은 여자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개를 뻗더니 천천히 기어 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여자는 끝까지 거북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거북이를 키워볼까. 거북이가 수명이 길어서 나 사는 날까지는 같이 살아줄 것 같은데.

 

여자의 말이 묘하게 섬뜩했다. 그녀가 이 거북이를 탐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대체 어떻게 그러냐고 할 것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했다. 카지노 게임에게도 그래왔으니, 생판 남인 나에게 그러는 것은 너무나 쉬울 것이다. 그녀가 자기 아들의 지분을 주장하며 이 거북이를 달라고 하면 어떡할까. 당연히 주지 않겠지만 곤란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여자를 떼어낼 방법이 필요했다.

 

형사님. 마지막으로 목격했을 때 특이 사항을 만나서 말씀드린다고 했잖아요.

 

맞다. 그거 물어보려고 했어요. 뭐가 있었나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 카지노 게임이가 어머니랑 전화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카지노 게임이가 전화로 심한 욕을 했어요. 원래 욕을 절대 안 쓰는 애였는데… 되게 화나는 일이 있나 보다 싶더라고요. 저한테 어머니를 만나고 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서는 뛰쳐나갔어요. 그래서 카지노 게임이 며칠 안 들어와도 그러려니 생각했어요. 본가에 있겠거니 싶었죠.

 

여자는 당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본 여자의 표정 중 가장 생명력이 있어 보였다.

*

카지노 게임의 실종 수색은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나의 증언으로 여자는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카지노 게임의 실종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형사가 말해주기를, 카지노 게임의 모습을 어느 시시티브이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카지노 게임의 행방을 알 수 없으니 수사를 진전시킬 수가 없었다. 경찰은 인신매매 납치 등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시시티브이도 잘 없고 흉흉한 일이 종종 일어나는 동네라서 그러한 결론을 내린 경위가 납득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

사건이 거의 종결되고 새로운 카지노 게임과의 일상도 점차 내 삶에 익숙해져 나갔다. 더는 복잡하게 생각할 문제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내 삶은 안정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때에 나는 또 다른 생각에 잠겼다. 제주 바다에 가보고 싶어졌다. 제주 바다에 가서 배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면 바다거북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바다거북을 보고 싶었다. 드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며 제힘으로 먹이를 구하는 그런 거북을 한 번은 꼭 보고 싶었다. 그건 카지노 게임이 평생 그런 삶을 누리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지노 게임이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를 자주 생각했다. 나는 물론 거북이인 카지노 게임도 좋아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안쓰럽다는 감정이 들었다. 카지노 게임은 너무 좁은 곳에 있었다. 인간이었을 적 자기 몸의 반도 안 될 것 같은 좁은 수조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 더 나은 방법이 없었다. 이미 꽉 차 있는 좁은 방에 큰 수조를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카지노 게임을 함부로 자연에 방생시킬 수도 없었다. 카지노 게임은 어쩌면 이 좁은 곳에서 꼼짝없이 계속 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갑갑해졌다.

다른 생각도 해봤다. 얘는 인간이 아니라 거북이다. 카지노 게임은 이제 인간이 아니니까 인간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려고 노력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어떤 몸을 가졌든지 나에게 이 존재는 카지노 게임이었다. 카지노 게임은 빠른 움직임으로 공기저항을 뚫고 달려 나가는 것을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때의 시원함과 쾌감, 자유로움과 압도감을 즐기는 존재였다. 내가 느끼기에 카지노 게임은 거북이가 되었어도 원래의 마음을 보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알아보고 세상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카지노 게임을 단지 거북이로 취급하고 신경을 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

그렇게 월급을 모으고 최저가 항공권을 구해 여름 방학 끝 무렵에 제주도를 1박 2일로 다녀왔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바다거북을 보지 못했다. 나는 바다거북을 보았다는 후기가 있는 다이빙샵에 가서 스노클링을 했다. 나는 이 근처에서 정말 바다거북을 볼 수 있냐고 물었고, 경력이 꽤 되어 보였던 직원은 그건 하늘에 달린 일이라고 못 박았다. 나는 제주 바다를 다 돌아다닐 기세로 스노클링을 했지만 바다거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날의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다.

대신 스노클링을 하며 실컷 본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바다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바다는 정말 푸르렀다. 바다 생물들은 떼를 이루어 다니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를 지나쳤다. 나는 내가 그 바다 생태계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바다에서 카지노 게임이 헤엄치는 상상을 했다. 카지노 게임과 내가 함께 바다의 온갖 곳을 누비는 상상. 물론 실제로는 카지노 게임에게 지느러미가 없으니, 헤엄을 잘 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런 것은 다 제쳐두고, 카지노 게임이 앞발을 힘껏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카지노 게임은 해초 아래에 숨기도 하고 해파리를 잡아먹기도 했다. 자기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으로 물길을 조정하며 자유롭게 유영했다.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물의 저항을 느끼면서 힘찬 몸짓으로 물살을 가를 수는 있었다.

스노클링을 마치고 나와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카지노 게임과, 영화 동아리 사람들과 인천 바다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 제작을 하나 마치면 다 같이 어디로든 여행을 가는 것이 우리 동아리의 원칙이었다. 그때는 인천 을왕리 해변으로 향했다. 우리는 두세 시간 동안 바다에서 신나게 물장구치며 놀았고 바다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딱 이 무렵이었다. 모두가 물에 젖어 모래사장을 걷다가 나는 장난으로 카지노 게임을 살짝 밀치고 도망갔다. 카지노 게임의 보복이 두려워 도망치려는데 모래사장에서는 땅이 푹푹 파여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찌하든 최선을 다해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카지노 게임이 웃으며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왔다. 역시 카지노 게임은 모래사장에서도 잘 달렸다. 나는 얼마 가지 못하고 잡혔고 우리 둘 다 모래를 몸에 잔뜩 묻혀 돌아갔다.

짧은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내가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언제일지 예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막막하지만 어쨌든 그때가 온다면, 카지노 게임에게 엄청나게 넓은 수조를 사주고 싶었다. 카지노 게임이 언제든 물속을 유유히 미끄러지거나 힘차게 물살을 가를 수 있을 만큼 큰 수조. 그렇게 되면 카지노 게임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 자유로운 카지노 게임을 다시 볼 수 있을 방법이.

늦은 저녁 나는 공항에 도착했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는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던 쪽에 가까웠는데 내가 그 무의식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 어쨌든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언덕이었다. 대외적으로 카지노 게임이 실종 처리가 되었는데도, 그러니까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인정했는데도, 가로등이 더 지어지거나 시시티브이가 설치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 드문드문한 가로등 불빛을 따라 언덕을 올랐다. 언덕 끝에 도착해 왼쪽으로 꺾으면 익숙한 내 빌라가 보였다. 불이 꺼진 집에 들어갔다. 나는 굳이 불을 켜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은 자는 듯했다. 나도 얼른 씻고 더는 옆에 누가 없는 침대에 누웠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감았다.

*

한 청년이 달린다. 아찔하게 가파른 언덕을 달려 내려간다. 엄청나게 빠른데도 청년의 자세는 흔들리지 않는다. 대신 청년의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안에서부터 끓어올라 당장이라도 무언가 내뱉어야만 할 것 같다. 씨발, 이라고 소리친다. 너무 크게 숨을 내쉬어서 순간 호흡이 꼬인다. 청년은 속도를 줄이는가 싶더니 다시 안정을 되찾는다. 청년은 어디론가 계속 달린다. 눈이 오고 비가 와도, 낮에도 밤에도. 청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길을 따라 쭉 달린다. 카메라는 그의 달리는 옆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청년은 해변에 도착한다. 청년은 모래 위에서도 흔들리는 일 없이 달린다. 점점 물가에 가까워진다. 청년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힘차게 달려 나간다. 청년은 물 위를 달린다. 청년은 물 위를 지면처럼 총총 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 카메라는 물 위를 달리는 청년의 뒷모습만을 바라본다. 청년의 모습은 점차 작아지다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푸르고 광활한 바다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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