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관해서라면 응당 슬프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 종말이 온다」는 마른장마와 폭우가 연달아 지나간 올해 여름의 끝자락에 쓴 시다. 시에 등장하는 ‘도깨비불이 마을(도시)을 태우는 이야기’는 실재하는 전승이나, 내가 해당 모티프를 접한 계기는 이영도의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였음을 밝혀 둔다.
처음으로 시를 쓴 장소도 타는 듯이 붉은 공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살던 집의 현관 오른편에 딸린 작고 조금 추운 방. 해 질 녘이면 종종 방 전체가 선명한 주홍색으로 물들었으므로 나는 그곳을 붉은 방으로 기억한다. 방의 사면을 채우던 석양과 차가운 저녁 공기의 감각이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방에서 살던 때,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내가 쓰는 글을 시라고 부르지 못했다. 고등학교의 야간 학습실에서도, 스무 살에 다닌 대학의 황량한 캠퍼스에서도, 내가 쓴 것은 시가 아니라 그저 ‘짧은 글’이었다. 내심으로는 그것이 시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쩐지 부끄러워 차마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시라고 불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것 같았다. 어디로도 분류되지 않은,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가 없는 글이 대책 없이 쌓였다.
그것이 시가 아닐 수는 없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시 아니라고 떼어 놓고 구분 짓고 싶지 않다. 내가 쓴 글을 ‘시 비슷한 것’이라고 부르던 과도기를 거쳐, ‘시 비슷한 것’은 결국 ‘시’임을 느리게 받아들였다.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어색하지만, 마침내 내 시가 머물 자리를 마련한 것이 기쁘다.
제가 쓴 시가 많은 분께 읽힐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자리 없던 글들을 ‘시 비슷한 것’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지난해 봄학기 ‘창작의 세계’ 수업에서였습니다. 수업에서 저의 시를 읽어주셨던 학우분들과 저에게 시를 계속 쓰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던 신철규 교수님께 뒤늦은 감사를 전합니다. 같이 글을 읽고 쓰고 이야기 나누는 서울의대 문예부 부원들 고맙습니다. 특히 저의 시를 늘 따뜻하게 읽어주는 세영 언니에게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의심하고 믿으면서 오래 쓰고 싶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