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몸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을 소유하려 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일부다. 지니 카지노 사람들은 본인이 먹는 음식을 선택할 때도 주변 사람의 눈치를 본다. 음식을 주문할 때 암묵적으로 메뉴를 통일하고,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원하는 음식을 못 먹기도 한다. 단순 메뉴 선택마저 개인의 자유가 아닌 집단의 조화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쉽게 이질적으로 보인다. 그 극단적인 예가 바로 비건일 것이다. 친구나 학교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동물성 식품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고 상상해 봐라. 아마 무수한 질문과 불편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다.
비건은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넘어 모든 동물성 상품을 거부하는 사회 운동이다. 사람들은 환경, 건강, 동물권 등 다양한 이유로 비건을 선택한다. 2000년대에 들어 비건 식품 시장 규모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37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은 학교 급식에서 비건 메뉴를 따로 제공하고 평범한 음식점에 비건 메뉴도 4~5개씩 존재한다. 그러나 지니 카지노에서는 여전히 비건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다. 급식이나 공공기관 식단에는 채식 선택권이 거의 없고, 비건 인증제도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자연스레 개인의 윤리적 선택이 ‘불편한 요구’로 인식된다.
지니 카지노의 비건 인구 비율은 0.2% 이하로, 미국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동일성’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민족을 강조하며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고쳐주려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 ‘비건’이란 선택은 암묵적으로 정해진 사회적 동일성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다. 누군가 비건을 선언하는 순간 정상 범주 밖의 사람이 되고 만다. 존중하는 척 거리를 두거나 비건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도 한다. 실제로 기성 언론이 비거니즘을 평범하지 않은 기행으로 표현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비건을 조롱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비건충’ 등의 혐오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지니 카지노 사회에서 비건 선언은 사회적 자살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많은 사람이 사회적 시선 때문에 본인의 신념과 맞지 않는 식습관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비건이 아니며, 비건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부 비건들 또한 논비건에게 신념을 강요하는 등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글은 비건이든 아니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지 못하는 지니 카지노 사회의 문화적 폐쇄성을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 헌법에 의하면 우리의 몸, 신념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현실에선 사회적 시선과 암묵적 규칙에 따라 조정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혹은 고기를 먹는다고 언제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