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이지영 교수(국악과) 특별기고

『지니 카지노v』은 한국의 전통예술에 관해 이지영 교수(국악과)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 교수는 문정 이말량(1908~2001) 선생의 제자다. 이말량 선생은 경주 출신으로, 전통 가무악 분야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여럿 남겼다. 무형문화유산, 국악 등 전통예술은 입에서 입으로,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전해지는 전수 과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관심 부족이나 보존 노력 부재로 인해 한국의 전통이 점점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이 교수는 우리 음악을 지키고자 분투한 선조들과 그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후손, 그리고 현대 한류의 유행까지를 조망하며 전통예술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전했다.

이지영 교수(국악과)
이지영 교수(국악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환경 속에서 영향을 받으며, 그 속에서 미래의 꿈을 키워 간다. 나는 어린 시절 경주에서, 나이 지긋하신 전통예인 은사님을 만나 가야금을 배우고 춤추고 노래하며 한국 전통예술에 입문했다. 은사님은 경주에서 태어나시고 어린 시절 함흥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많은 공연활동을 하셨는데, 그곳에서 가야금산조의 명인인 정남희와 민속무용 승무를 처음 만드셨다는 한성준 등 당대 최고의 예인들에게 학습한 악가무(樂歌舞)의 전통예술을 올곧게 간직한 명인이셨다. 선생님은 이후 경주로 다시 귀향하셔서 전통예술을 전수하셨는데, 그가 남긴 카세트테이프 형태의 많은 음원 자료들은 현재 영남 지역의 사라진 전통예술을 복원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나는 어린 시절 운 좋게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가장 전통적인 한국 예술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주변 어른들은 종종 다른 좋은 것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가야금을 하냐는 핀잔을 주고는 했다. 어린 마음에도 속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가야금을 가르쳐서 모든 한국인들이 가야금을 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게 됐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부모님은 나를 위해 서울로 이사하셨다. 이후 나는 국악뿐 아니라, 서양음악, 미술, 전통무용, 발레 등 모든 예술 장르를 교육시키는 예술학교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됐다. 그때 나는 전통음악만 알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며, 동시에 예술에 대한 이해와 생각의 크기가 넓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서양악기를 하는 여러 친구들 사이에서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는 했다. 이렇게 음악이 양분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꼈고, 어른이 되면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어렴풋이 가지게 됐다.

이후 대학을 진학하고 수강했던 국악사 수업시간에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한국악기 중 몇몇은 오래전에 외국에서 수입됐고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완전히 한국화돼 지금은 전통악기와 함께 한국 전통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연주되는 서양악기도 몇 백 년이 지나면 한국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쯤 되면 전통악기와 서양악기의 구분 없이 모든 악기가 하나가 돼 한국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나는 먼 미래에도 쓰일 새로운 한국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됐으며 이후 국악기와 서양악기 연주자 9명이 함께하는 ‘현대음악앙상블 CMEK’라는 앙상블을 결성해 20년 넘게 활동을 하게 됐다.

1989년에는 Oscar S. Braimah라는 아프리카 가나 작곡가의 가야금작품을 시작으로, 1993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Klaus Huber라는 세계적인 작곡가의 가야금 독주곡을 초연하기도 했다. 이후 Chou Wen-chung, Donald Reid Womack, Christain Utz, Takahashi Yuji 등 세계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가야금이 세계 음악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또 세계의 작곡가들이 가야금을 위해 작품을 쓰는 미래를 꿈꾸며 가야금이 박물관에 있는 악기가 아닌 지금 이 시대의 악기로, 가야금의 세계화·현대화라는 보다 거창한 꿈을 꾸게 됐다. 

이후 독일 다름슈타트 현대음악강좌에서 작곡가들을 위해 가야금을 소개하고 각국의 현대음악제나 워크숍, 초청독주회, 앙상블연주회 등에 참여하며 가야금을 알리는 일을 꾸준히 하게 됐다. 가야금의 가장 전통적인 음향이 외부의 눈에는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음향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알게 되고, 현대음악계에서 가야금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게 돼 많은 보람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처음 가야금의 세계화와 현대화를 화두로 많은 활동을 하며 외국의 현대음악연주회, 워크숍 등을 갈 때는 비장한 마음을 품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때로는 어떻게 하면 만나는 작곡가에게 가야금 곡을 쓰게 할지 궁리하기도 했고, 항상 가야금을 알리겠다는 뜨거운 열정으로 가슴 두근거리며 무거운 가야금을 메고 여러 나라를 겁없이 다녔다. 그러나 이때는 내 희망이 번번이 좌절되기 일쑤였다. 한국이라는 극동의 아주 작고 가난한 나라 출신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민족악기를 가지고 활동하며 민망하고 서러운 경험도 했다. 당시는 내가 나라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던 시간들이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중국, 일본, 몽골, 미얀마 등 다른 나라의 민족악기를 하는 연주가들을 만나면 그들이 반갑기도 하고 그들에게 경쟁심을 느끼기도,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어디선가 동아시아 어느 나라의 민족악기를 하는 연주가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 나라는 내전으로 국민 전체가 너무나 큰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다. 그 연주가는 이런 때 외국에 편히 있는 것조차 미안해하며 나라 걱정에 울면서도, 자기 악기를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어 애를 쓰고는 했다. 그 마음이 너무도 이해가 되고 가슴 뭉클하며 국가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꼈다.

나의 꿈은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가야금을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모여 하나의 새로운 한국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또 세계인들이 가야금을 사랑하고 외국의 작곡가들이 가야금을 위해 새로운 작품을 쓰는 가야금의 현대화·세계화가 이뤄질 미래를 그리며 꿈을 키우고 있다. 젊은 시절 이런 나의 활동들은 후학들에게 물려주는 재산이 돼, 가야금의 새로운 길, 음악하는 여러 방법 등 후학들에게 많은 전범이 됐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거울앞에 돌아와, 다시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와 전통음악의 올곧은 전승이라는 소망과 화두로 가야금의 가장 전통적인 성음을 찾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됐다. 

요즘 한국의 대중플러스 카지노가 배경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만의 플러스 카지노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친숙해졌다는 사실도, 인간이 부르는 노래가 아닌 만화의 캐릭터들이 부르는 노래에 세계인들이 열광한다는 상황도 정말이지 놀랍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매기 강이라는 한국계 캐나다인을 비롯해 여럿이 감독을 맡았다. 이 영화는 한국의 대중음악뿐 아니라 한국 플러스 카지노의 총체적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K-Pop과 함께 현대 한국의 플러스 카지노뿐 아니라 전통의상, 건축, 미술, 음악, 음식 등 영화 곳곳에 한국의 전통플러스 카지노가 스며들어 있다. 이 영화가 일본 자본이 들어간 미국 할리우드제작사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에서 제작된 작품이라니 더 놀랍다. 한국의 전통플러스 카지노가 알게 모르게 스며있는 이런 영화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세계인들이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너무나 반갑고 감사하다. 

전통음악을 하는 나로서는 이런 사회적 현상을 접하며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고는 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달라진 모습을 접할 때, 우리 플러스 카지노가 이토록 존재감을 키웠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고난이 많았던 역사에서 전통음악을 업으로 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승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특히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전통음악이 거의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선조들이 우리 음악을 지키고 전승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셨는지를 알기에,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유산을 많이 물려주신 우리 은사님과 같은 선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 유행을 보며 나 역시도 우리 전통을 지키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다. 이는 코끝이 찡할 정도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케이팝 등 한류가 세계적으로 큰 유행을 일으키는 것처럼 한국의 플러스 카지노가 타국에 유행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풍, 신라풍이 동아시아에 유행한 것이나, 발해풍, 고려양(高麗樣) 등이 주변국에 많은 플러스 카지노적 영향을 주며 유행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예전의 경우가 단순히 주변국에서의 유행이라면, 지금 한류의 세계적 유행은 현대 사회가 초고속 사회이기에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일 테다. 

이렇게 케이팝의 젊은 예능인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또한 청중들이 단체로 떼창을 부르며 신명나게 흥겨워하는 것 또한 한국인의 천성 내지는 기질일 것이다. 중국의 역사서 『위지 동이전』을 보면 우리 민족이 밤새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 밤새 발로 땅을 구르며 춤추고, 걸음걸이조차 장단이 있다고 표현하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한민족은 천성적으로 흥을 많이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떼창 플러스 카지노나 2002년 월드컵에 모든 국민이 한 자리에 모여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며 신명나게 놀았던 것을 떠올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고 또 그런 천성을 타고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세월이 흐르며 시대의 흐름도 변했다. 예전에 가야금을 알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가슴 두근거리며 외국을 나갔다면, 이제는 외국인들이 먼저 가야금에 관심을 보이고 작곡을 제안하고 연주 협업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교류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한국 전통음악이 세계 교류의 장에서 그 예술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가고 있다. 이제 정말 우리가 플러스 카지노 강국이 돼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어린 시절 왜 하필이면 가야금을 시키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어머니는 “이 아이가 크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라고 답하시고는 하셨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어머니 생각이 옳았다고, 이 길로 가게 해 주셔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김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제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살고 싶어 하는 나라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 위력을 과시하는 나라가 아닌 높은 플러스 카지노의 힘으로 온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나라다. 이런 국가야말로 진정한 강대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나라가 부강하고 안정돼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의 소망이 이제는 여러분들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 새로운 꿈을 꾸고, 또 그 꿈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며 한국의 플러스 카지노가 더 넓은 세계 속에서 찬란히 그리고 아름답게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많은 플러스 카지노적 콘텐츠를 물려 받아 이를 바탕으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지금의 한국 플러스 카지노를 꽃피웠듯이, 지금 여러분들이 만들어 가는 수많은 플러스 카지노적 콘텐츠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후손들에게 소중한 플러스 카지노적 자산으로 전해지기를, 세상 곳곳에 아름다운 울림을 전하기를 소망한다. 그리해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빛나는 플러스 카지노국가가 돼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기를 소망한다. 지금 여러분이 만드는 플러스 카지노가 곧 미래의 한국이다. 여러분들이 만드는 한국의 젊은 플러스 카지노가 미래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지니 카지노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