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사를 준비하며 인터뷰를 위해 인천으로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이 세상에서는 플러스 카지노 권리가 보장되는 것조차 어려운가. 만약 동성 부부나 비혼모에게도 정자 기증을 받을 권리가 보장됐다면 이 기사를 쓸 필요도 없을 터였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장애인이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매일 시위를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플러스 카지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의 용기 있는 투쟁이다. 이들 또한 이미 이동권이 보장되고 있었다면 힘겹게 시위할 이유조차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인천시청역에 내려서 축제 현장에 도착하기 전 내가 먼저 마주친 이들은 축제에 참여하는 이들이 아니라 축제를 반대하는 성 소수자 혐오 세력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을 보자마자 코웃음이 나왔다. 이들이 빤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데 뭐가 잘못됐고 존재하면 안 된다는 것인지 잘 이해도 가지 않았을뿐더러 존재하는 이들을 부정하는 것이 외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혐오를 위해 여기까지 온 그들의 노력이 신기하고 남을 혐오하는 데에 주말을 쏟는 이들이 한심했다. 어쩌면 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수 있지만 정말 논리적인 이유가 있긴 한지 묻고 싶었다.
인터뷰하다 보니 자신이 정자은행을 이용하는 것이 불법이 아님을 몰랐던 당사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법은 분명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현실이 그렇지 않다 보니 이 상황에 대해 오랜 시간 깊게 분석하지 않는 이상, 당사자들조차 불법이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분명 헌법 제1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하지 않았나?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헌법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도 헌법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었다.
당연한 것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은 시위하고, 언론에 알리고, 열심히 활동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 권리를 되찾으려 한다. 그런 이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것 없다. 지금 당장 국회나 거리로 달려가서 소외되는 이들을 직시하라고 소리 지를 수는 없었다. 내게 그럴만한 용기는 없었기에. 그래서 『지니 카지노v』에 들어왔다. 용기 없는 내가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선택한 조금은 비겁한 생존 방법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소외되는 이들의 이야기에 모두가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이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기사를 쓰고자 한다. 혹자는 그래서 얼마나 바뀌겠냐고 물을 수 있다. 그 물음에는 해봐야 알지 않겠냐고 대답해 주고 싶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키듯 미세한 노력이 언젠간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분명히 믿는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그것이 올바른 사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