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목) 조국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탈당을 선언하며 당내 성추행 및 성희롱 사건을 폭로했다. 피해자이기도 한 강미정 전 대변인은 최초 성비위 접수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외부 조사기구가 설치되지 않았고, 당내에 제대로 된 피해자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이 드러난 뒤에도 당시 이규원 전 사무부총장이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2차 가해 논란을 키우면서, 당이 사건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2022년 정의당에서도 청년정의당 강민진 전 대표가 당내 인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지만, 당시 여영국 전 대표가 공식 절차 대신 경고로 처리할 테니 발설하지 말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공분을 산 바 있다.

정치권에서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성비위 사건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제도의 부재와 2차 가해가 동시에 문제시된다. 사건이 발생하면 진상조사위원회나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지만, 피해자 상담·가해자와 피해자 분리·책임 규명과 가해자 징계는 물론 피해자가 2차 가해나 당내 괴롭힘·보복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조치까지 포함한 실질적 대응보다는 사태를 봉합하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위원회가 과연 상설 전담 기구로 기능하는지, 위원 구성과 운영 방식은 전문성과 독립성, 중립성이 온전히 지켜지는 형태로 운영되는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 의회의 사례는 시사점을 준다. 영국 의회는 독립고충처리제도(ICGS)를 통해 괴롭힘·희롱 등 성적 부정행위의 접수부터 조사·제재까지 독립적이고 상설적인 체계로 운영하며, 징계 결정은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 정치적 이해관계를 차단하고 전문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전담 제도의 정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성비위 문제는 개별 구성원의 일탈로만 설명될 수 없으며, 조직 전반의 문화와 성인지 감수성, 책임 규명과 제도 운영을 둘러싼 구조적 결함, 그리고 당내 권력관계와 깊이 맞닿아 있다. 실제로 많은 사건에서 조직은 문제를 몇몇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거나 조직 보위 논리를 앞세워 은폐하려 했고, 피해자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탈당까지 무릅쓰고 폭로해야만 사건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정의당 사례처럼 공식 절차가 마련돼 있어도 지도부가 조직 보호를 우선하면 피해자는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따라서 단순히 기구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 해결이 어렵다. 조직 지도부와 구성원들이 성비위를 조직 전체의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권력 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엄정한 대응 의지와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 보호에 대한 확고한 규범 의식을 지니며, 이를 구체적 윤리 규범으로 강화하고 실천할 때에야 제도가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한국 정치권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상설 전담 기구를 마련하고, 각 정당 내부의 성폭력 예방 교육과 2차 가해 금지 윤리 규범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비위를 조직의 존립과 신뢰, 장기적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철저히 대응하는 근본적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성비위를 단순한 이미지 관리나 일시적 위기 수습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윤리 규범이 함께 작동해 조직 전체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일 때, 정치권은 비로소 변화의 의지를 행동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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