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국사학과 정용욱 교수

 

지난 7일(목) 인문관7(14동) 501호에서 정용욱 교수(국사학과)를 만났다. 한국 현대사 연구의 역사와 함께한 그는 민족 해방 전후와 미 점령의 역사에 대한 기초 자료가 없던 시절 직접 미국으로 건너갔다. 정 교수는 그곳에서 사비로 구한 자료를 모아, 60여 건의 자료집을 만들어 현대사 연구의 발전을 촉진했다.

 

Q. 한국 현대사 연구에 일생을 투자하게 된 계기는?

A. 전공을 뚜렷하게 정하지 못한 채 인문대에 입학했다. 그런 내게 독일에서 독일사를 전공하던 친누나가 타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바가지로 바닷물을 푸는 것과 같으니, 한국사를 전공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모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외국의 역사 또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국사를 전공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그 충고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다. 연구 주제를 선별할 때 본인이 나고 자란 사회의 요구에 맞는 주제를 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자국 중심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모국 학계의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해야 제대로 된 역사를 쓸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게 서로 다른 국가의 관점들이 충돌하면서 진실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Q. 가장 오랫동안 천착한 주제 및 학문적 목표는 무엇인가?

A. 한국 현대사 연구가 처음 태동한 90년대 중후반에는 민족해방과 전쟁, 그리고 이때의 사건들에 얽힌 정치와 외교가 주된 연구 주제였다. 나는 미군정 점령 정책의 성격과 그것이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 6·25 전쟁 시 미군의 심리전 등을 연구했다. 당시 기초 자료가 없었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National Archives)에서 1년여간 사비를 들여 자료를 모아 한국으로 들여오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제주 4·3 사건, 여순 사건 등 주목받지 못했던 일반인들의 역사까지로 연구 주제를 확장했다. 이때는 제자들과 함께 구두 자료 수집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도 했다. 

 

Q. 역사를 다룰 때 경계해야 할 점은?

A. 자기중심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나는 역사란 자신을 상대화하는 능력을 기르는 학문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자신의 생활 반경 안의 협소한 관점으로 사물을 판별할 때가 많다. 시대에 따른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을 키우고,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한국과 외국의 가치 판단의 차이를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해석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보편적인지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기 냉소주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양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균형을 찾아야 한다.

 

Q. 역사학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소상 수감에서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나. 역사에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와줄 수 있다. 예를 들면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겪으면서 국민이 나름대로 시민의식을 길러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년의 12·3 비상계엄에서 군인들의 행보가 소극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역사학은 집단적 정체성과 의식을 형성하는 데에 일조한다. 역사는 결국 경험의 축적이기에 이를 토대로 어떤 방향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지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Q. 정년퇴임하는 소감은?

A. 서울대의 연구 공동체가 굉장히 활력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모으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생활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런 환경을 더 이상 일상적으로 누릴 수 없기에 시원섭섭하다. 더 많은 역할을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좀 있다.

 

Q. 퇴임 이후 계획은?

A. 미디어 전쟁과 문화 냉전을 주제로 한 책을 내고 싶다. 또한 한국 현대 지성사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싶다. 서울대 80년사 편찬위원장도 맡게 됐다. 그래서 정년을 맞았지만 내년 가을까지는 학교에 나와 교사를 편찬할 예정이다.

 

정용욱 교수는 강단과 연구실을 오가며 학문적 성취를 쌓는 데 그치지 않고, 학내외에서 비판적 성찰과 창의적 담론의 장을 넓히기 위해 힘써 왔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논문을 많이 쓰는 등 실적을 쌓는 것도 좋지만 학문 공동체를 이루는 일원으로서 창의적인 역할을 주도해 나가길 바란다고 답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학문과 공동체, 그리고 사람을 향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앞으로도 정 교수의 행보를 이끄는 힘은 바로 이 흔들림 없는 신념일 것이다.

 

 

 

사진: 김재훈 기자 

gmb91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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