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영화 |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이 전하는 연대의 의미
국내에서 지난달 23일 개봉한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작년 5월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첫 상영됐으며, 그랑프리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인도 여성들의 삶을 잔잔하게 조명하는 이 영화는 인도 여성 감독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기자는 지난 17일(토) 영화관에서 그녀들이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엿보았다.
◇치열하지만 어둠이 드리운 도시, 카지노 커뮤니티=영화는 기존 ‘발리우드’ 영화 속에서 어머니나 아내로 등장하며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일을 하고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모인 도시 카지노 커뮤니티에서 이주민인 세 주인공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는 치열하게 살아간다. 프라바와 아누는 카지노 커뮤니티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병원 요리사인 파르바티의 집에 함께 세 들어 살고 있다. 세대도 성향도 다른 세 주인공은 때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하지만, 기댈 곳이 돼 주기도 한다. 프라바는 아누가 월세로 지불할 돈이 부족해지자 이를 대신 내 주기도 하고, 아누와 함께 파르바티의 이사를 흔쾌히 돕는다.
그러나 세 주인공이 빛을 상상하며 모인 환상의 도시 카지노 커뮤니티는 사실 이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공간이다. 이들에게 카지노 커뮤니티의 낮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이고, 밤은 항상 비가 내리는 외로운 시간이자 사랑을 이루지 못해 방황하는 시간이다. 영화는 이런 어둠의 공간으로서 카지노 커뮤니티의 정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덧없음에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실제 카지노 커뮤니티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어둠 속의 세 여성=영화는 세 주인공이 카지노 커뮤니티에서 겪는 서사를 통해 억압당하는 인도 여성의 삶을 고발한다. ‘아누’는 여성에게 자유로운 사랑과 연애가 허락되지 않는 인도의 현실을 보여준다. 힌두교도인 아누의 부모는 같은 종교의 남자와 중매결혼을 권유하지만, 아누의 연인은 이슬람교도 ‘시아즈’다. 자유연애, 심지어 종교가 다른 이와의 연애는 부모에게 절대 알릴 수 없지만 아누는 낭만적인 사랑을 좇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연인에게 함께 머물 곳을 허락하지 않는 카지노 커뮤니티에서, 이들은 어두운 밤 주차장 구석에서 몰래 입을 맞출 뿐이다.
‘프라바’는 결혼이라는 억압적 질서에 순응하는 여성의 모습을 나타낸다. 얼굴도 몇 번 보지 못한 채 중매로 결혼한 후, 독일로 일하러 떠난 그의 남편은 1년 반 전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다. 허울뿐인 결혼이지만, 프라바는 자신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이는 의사 ‘마노지’를 무시해야만 한다. 하루는 프라바에게 이름 없는 소포가 도착한다. 소포에 담긴 밥솥이 독일 제품인 것을 알게 된 프라바는 그것을 보낸 이가 남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프라바는 남편이 돌아오는 상상을 하며 용기 내어 전화를 걸지만, 전화기 너머로는 음성 사서함 소리만 남는다.
‘파르바티’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인도의 현실 속에서 남성에 의존해야 하는 자국 여성의 현실을 드러낸다. 파르바티는 건물 재개발로 22년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험에 처한다. 집을 소유한 파르바티의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소유권을 입증할 유효한 서류가 없는 파르바티로서는 거주 권리를 증명할 수 없다. 변호사에게서도 파르바티를 기억하는 이웃들의 증언은 지금까지의 거주를 증명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뿐이다.
◇그녀들이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카지노 커뮤니티에서 각자의 아픔을 겪던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는 파르바티의 고향인 항구도시 라트나기리로 향한다. 카지노 커뮤니티에서 본 빛의 환영을 과감히 뒤로한 채 도착한 라트나기리에서, 이들은 비로소 꺼지지 않을 빛을 찾을 수 있었다. 파르바티는 자신의 존재와 권리를 증명할 수 없었던 카지노 커뮤니티에서 벗어나, 라트나기리에서 자신의 안식처와도 같은 집을 구매한다. 파르바티의 이사를 도우며 프라바와 아누는 카지노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시간과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파르바티에게 “우리가 알아요”라는 위로를 건넨다. 이렇게 세 주인공은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위로하며 새로운 가족으로 거듭난다.
아누와 프라바 또한 그들을 얽매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누가 카지노 커뮤니티에서 ‘시아즈’의 동네에 가기 위해서는 이슬람교 교리에 따라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다. 그러나 종교와 결혼이라는 제도적 구속이 존재하지 않는 라트나기리의 해변에서 아누는 시아즈와 진정한 사랑을 이루게 된다. 한편, 프라바는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던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프라바는 우연히 폭풍우 속 바다에 빠진 한 남자를 구하는데, 자신에게 고백하는 남자의 모습에 남편을 투영하게 된다. 그러나 프라바는 그 남자 속의 남편을 거절하며 ‘빛이라 상상했던’ 남편이 사실은 자신의 진정한 빛이 아님을 깨닫는다.
카지노 커뮤니티에서 라트나기리까지, 영화는 세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조명한다. 이들은 많은 측면에서 다르지만, 라트나기리의 바다를 함께 바라본다. 영화에는 “난 그 빛을 보며 밤에도 온기를 느껴요”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이는 영화 속 서로에게 빛이 돼 주며 온기를 전하는 이들을 진심 어린 연대로 위로한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파얄 카파디아
123분
쁘띠 카오스 외
2025년 4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