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안도경 교수(정치외교학부) 특별기고
‘비상계엄’은 이제 더 이상 군사정권 시절의 역사적 사건이 아닌, 우리 현실 정치의 중심에 등장한 위기 단어가 됐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헌정 질서에 정면 도전했다. 지난 4일(금)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지만,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민주주의 위기의 완전한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도경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우리 카지노전쟁론’이라는 위험한 정치 담론이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 카지노전쟁론이란 무엇이며, 왜 지금 우리 정치에 가장 큰 위협으로 등장한 것일까.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까. 안 교수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아님에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군대까지 투입했다. 이로써 상상하지도 못한 위기가 촉발됐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고 대통령을 탄핵 소추해 위기 수습이 시작됐다. 이 기고문을 제출하는 시점에는 선고일만 정해져 있다. 인쇄돼 나올 때는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내려져 있을 것이다. ‘탄핵 인용’ 이외의 선고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선고와 무관하게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하나의 이론이 있다. 그것은 ‘우리 카지노전쟁론’이다. 계엄선포 직후 여론은 압도적으로 계엄에 반대하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지지했다. 그러나 점점 여론조사에서 탄핵을 반대하는 비율이 증가했고 탄핵 반대 세력은 더 과격해졌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우리 카지노전쟁론은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계엄 선포 이후 갈등을 더 격렬하게 만들었으며 사태의 수습을 어렵게 했다.
계엄 옹호론자들이 말하는 우리 카지노전쟁이란 무엇인가? 우선 그와 대비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우리 카지노전쟁에 대비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법과 제도를 따르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정부를 구성하고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전제 위에 국민주권과 정치적 평등이라는 민주적 이상을 심화하는 여러 시도가 가능하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도, 정해진 영역에서 정해진 방법으로 공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을 법치주의라고 한다. 각 개인을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장해 자율적인 협동으로 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자유의 원리다. 인류가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법치주의·자유의 가치를 근본으로 하는 정치우리 카지노를 자유민주주의 또는 자유헌정민주주의(liberal constitutional democracy)라고 부른다. 이 우리 카지노는 다양한 제도와 정책에 열려 있다. 내각제부터 대통령제까지, 소선거구제부터 비례대표제까지, 기본소득 복지국가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까지 포용할 수 있다. 여러 제도와 정책이 공정한 선거 경쟁·정부 권력의 제한·개인 자유의 존중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카지노전쟁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게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계엄을 했다는 옹호론자의 말을 일단 믿어보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 카지노전쟁은 심각하고 임박한 위기에 직면한 자유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을 의미한다. 그것을 ‘전쟁’이라고 하는 이유는 파괴 세력의 공작으로 민주주의 정치가 이미 무의미해져 정상적인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의도, 또 계엄을 옹호하는 이들이 말하는 우리 카지노전쟁론에 대한 가장 너그러운 해석이다.
우리 카지노전쟁론이 정당한 상황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 파괴자들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그런 위험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가 내부의 적에게 이용당해 몰락한 사례는 많다. 타임머신을 타고 아돌프 히틀러 집권을 앞둔 1930년대 독일로 간다면, 바이마르 민주주의 헌정을 중단하고 초헌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의 집권을 막고 싶을 것이다. 파국을 막기 위한 발버둥에서는 게임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면 비상계엄 사태에 앞서 한국이 ‘우리 카지노전쟁’이 필요한 상황이었는가? 그렇게 볼 수 없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고 여야 모두 민주정치의 규범을 무시하는 막장 정치가 매우 우려스럽게 전개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갈등이 민주주의 안에서 해결될 수 없다고 단정할 이유는 없었다. 야당이 아무리 비판받을 행동을 많이 했다고 해도, 그들이 우리 카지노전복이나 공산화, 중국의 속국화 음모를 실행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너무 나갔다.
자유민주주의의 제도가 구조적으로 불공정하므로 진정한 자유와 민주를 위해서는 그 게임의 규칙을 초월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원래 좌파의 것이었다. 1987년 이후 한국의 진보는 자신들의 과거 이념에 따라, 또는 당시 사회경제적 상황의 한계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이상과 절차를 불신했다. 그들의 정치는 종종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며 행해졌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카지노 내에서의 실험, 진지전적 성과와 선거 경쟁에서의 성공으로 한국의 진보는 주류의 위치로 올라왔다. 게임의 규칙을 따르면서도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있으며, 자유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많은 사회경제적인 개혁을 이룰 수 있음을 배웠다. 그리하여 현재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는 다원적이며 복잡한 세력으로 진화했다.
일부 인사의 경력·과거 행태에 대한 애매한 선 긋기·광우병 파동·한미 FTA 반대·사드 배치 반대·근현대사의 쟁점에 대한 입장·친중 반일적인 외교 정책·선거법 개정 야합·다수 의석이 주는 힘의 무절제한 사용 등을 근거로 많은 국민은 민주당이 반우리 카지노적인 세력이라고 의심한다. 물론 민주당이 비판받을 이유는 많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전복을 위해 중국과 결탁해 선거를 조작하는 세력”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에 근거한 우리 카지노전쟁론은 매우 위험하며, 한국 보수의 비극적인 자기파괴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그들이 지키겠다고 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다. 공존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념과 이해관계를 공존하게끔 하고, 때로는 타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이자 장점이다. 반면 우리 카지노전쟁론은 전쟁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 카지노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상대방이 반우리 카지노 세력이라고 믿고,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민주주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보자. 이런 판단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결국 민주주의는 파괴될 수 있다.
우리 카지노전쟁론은 비상계엄의 배경 이론이다. 이후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욱 다듬어지고 광범위하게 선동됐다. 우리 카지노전쟁론에는 사실과 망상, 정당한 우려와 허위 선동이 섞여 있다.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승리를 뒷받침한 정치 연합을 스스로 해체하고, 무리한 정책을 강압적으로 추진하며 지지기반을 잃어갔다. 정치적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이전부터 빠져들고 있던 음모론을 체계화하고 극단화해 공개적인 선동으로 확산시켰다. 정치적인 무책임과 무능은 상대의 운신 폭을 넓히고, 상대의 많은 무리수를 합리적인 것으로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러했고, 이제 계엄 옹호 세력이 그렇게 하고 있다.
과연 계엄 옹호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동조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 카지노전쟁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진정한’ 가치를 위해서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유보하거나 다른 우리 카지노로 대체하려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해야 한다. 현재의 지정학적인 상황과 우리의 헌법적 국가정체성을 바탕으로 중국을 경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온갖 종류의 병리적인 반중 선동은 파시즘의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연상하게 한다. 공격적 민족주의 선동이 자국의 국민을 이롭게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중국을 겨냥한 음모론과 선거부정론의 결합은 특히 위험하다. 그런 선동에 넘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규칙에 대한 동의 및 체화 수준이 낮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재기의 기약이 없는 한국 보수의 몰락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적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 세대와 종교가, 또는 그 일부가, 파시즘 세력으로 조롱받는 것이 인간적으로 매우 안타깝다. 참으로 희비극적인 몰락이다.
민주주의 정치경쟁을 받아들이는 것의 무거움, 그 위기 감수적인 측면을 몰각해 적을 척결하는 것이 전부가 되고, 어떤 수단이 정당한지에 대한 고민을 거부함으로써 우리 카지노전쟁론이 만들어졌다. 우리 카지노전쟁론의 논리는 그들이 경계하는 중국 헌법 서문과 닮았다. 사회주의 제도를 적대시하고 파괴하는 “국내외의 적대세력 및 적대분자”와 투쟁하기 위해 공산당 영도 하의 인민민주주의독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연상시킨다. 중국과 러시아가 자유민주주의를 조롱하는 가운데, 망상에 기초한 음모론인 우리 카지노전쟁론은 그런 조롱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한국인들이 힘겹게 발전시켜 온 자유민주주의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희망적인 사고를 해보자면, 보수층 상당수를 포함한 국민의 절대다수가 비상계엄을 위헌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상황이 잘 극복될 것으로 믿게 하는 힘이다. 설령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지 않더라도, 다수 국민이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있는 한 헌정의 틀 내에서 이번 사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탄핵이 인용되고 선거 국면에 들어가면 탄핵 반대 세력의 상당수는 다시 민주주의의 틀 안으로 복귀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선거론이 극복되려면 보수의 선거 승리가 몇 번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의 이념, 행태, 세대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악순환의 가능성에 직면한다. 우리 카지노전쟁론은 보수의 쇄신을 어렵게 한다. 자기개혁의 실패는 정치적 실패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음모론과 우리 카지노전쟁론을 강화한다. 그리하여 상대당의 운신의 폭을 넓히고 상대당 내에서 더 과격한 세력이 득세하는 것을 돕는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탄핵 인용 이후 선거 국면에서는 우리 카지노전쟁론 세력의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 어떤 경선 절차를 밟고, 어떤 후보를 내세우고, 어떻게 자기 혁신을 하는가, 계엄과 탄핵에 대해 어떤 입장으로 자기반성하는가가 중요하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에 대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비상계엄이 명백한 위헌임을 분명히 선언했는가, 지금도 선언하고 있는가, 그리고 행동으로 증명했는가이다. 그 전제 위에서 정책에 대한 논쟁이 의미를 가진다. 한 걸음 더 나가자면, 한국 정치의 극단적 대립을 이끈 정치 지도자들이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지 않고 자신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을 제시하는가를 평가해야 한다. 이번에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선출되면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까지 차지하게 된다. 이것이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불안이 무근거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카지노의 가치와 제도적 규범을 지키면서 행하는 정치 투쟁과 망상적인 우리 카지노전쟁론으로 우리 카지노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후자는 반드시 실패한다. 현재의 우리 카지노전쟁론처럼 수호자가 수호의 대상을 먼저 공격하면, 상대 진영 내에서 ‘반’우리 카지노적인 세력이 득세한다. 그리고 중립자들을 상대의 편으로 몰아준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는 스스로 우리 카지노의 가치를 철저하게 지킬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자기부정적인 우리 카지노전쟁론이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수호하고자 하는 우리 카지노와는 다른 어떤 괴물일 것이다.
자유민주적인 심성의 출발점은 내가 오류를, 때로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과 편향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기보다는 정교한 이론으로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 편향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은 타인, 상대방, 적수에 대한 관용의 폭을 넓힌다. 내가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상대가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악당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과 증거를 중시하고 성급한 결론으로 돌진하지 않게 된다. 관용은 위험의 감수를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반면 조급함과 불안은 망상적 음모론에 취약하다. 상대가 자신을 파괴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는 길로 나간다. 승리를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삽화: 박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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