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은 더 이상 소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국내 체류외국인은 전년 대비 11.7% 증가한 2,507,584명으로 집계됐다. 해외로 뻗어나가는 한인들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한국의 재외동포는 총 7,081,519명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영화 〈미나리〉와 도서 『H마트에서 울다』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들이 한인 이민자의 삶을 그려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이민의 출발점에는 122년 전 카지노 게임 종류로 떠난 한인들이 있다. 한인 마을을 꾸리며 정착하기 시작했던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지 사회와 교류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며 카지노 게임 종류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자리 잡았다. 기자들은 미주 한인 이민의 역사가 시작된 카지노 게임 종류를 직접 방문해 한인 이민사와 이민자들의 삶을 들어봤다.
그들은 왜 카지노 게임 종류에 갔을까
◇초기 이민자들,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 사회의 터전을 닦다=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 이민의 역사는 1902년에 시작됐다. 인천 제물포를 떠나 카지노 게임 종류 땅을 밟은 102명의 한인들은 한국 최초의 노동 이민자였다. 카지노 게임 종류의 사탕수수 농장들이 값싼 노동력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찾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의 이민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이주 노동의 물결은 대한제국이 이민금지령을 선포한 1905년까지 이어져 약 7,400명의 한인들이 카지노 게임 종류에 정착했다. 뒤이어 1910년부터는 남성 이주 노동자들의 혼인 상대가 부족해지자, 혼인을 위해 사진만 보고 카지노 게임 종류로 건너 온 ‘사진신부’의 행렬이 카지노 게임 종류로 향했다. 1924년 미국 이민법에 의해 동양인 이민이 금지되기 전까지 카지노 게임 종류에 도착한 사진신부는 680여 명에 달했다. 이 시기까지 카지노 게임 종류에 정착한 한인들은 주로 ‘초기 이민자’로 분류된다.
카지노 게임 종류대 한인이민연구소 이덕희 소장은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은 ‘Korean camp’, ‘Japanese camp’ 등 민족끼리 모여 마을을 형성했다”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한인 마을의 중심에는 교육이 있었다. 이 소장은 “초기 이민자들은 백성이 무지해서 나라를 잃었다고 생각했다”라며 “이에 한인들은 교육 활동에 진력했으며, 정체성 유지를 위한 모국어 교육도 활발히 이뤄졌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교육의 과정에서 교회가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회 서대영 회장은 “카지노 게임 종류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운 교회는 우리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낯선 타국에서 교회는 반가운 동포를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했다. 한인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한인기숙학교 등 여러 교육기관이 세워지며 교회는 한인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민법 개정, 새 이민의 물결=그러나 사진신부의 이민 이후, 미국 정부가 배타적인 이민 정책을 펼치며 한인 이민은 소강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만연했던 이민배척주의와 인종주의는 미국의 강력한 이민 봉쇄 정책에 힘을 보탰다. 특히 1924년 이민법 개정은 인종·국적에 따라 이민자 비율을 제한하며 아시아인의 이민을 제한했다. 서대영 회장은 “이 시기 미국으로 이민한 한인은 다른 시기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민에 대한 미국의 보수적인 태도는 1940년대 이후 완화되기 시작해, 1965년 ‘이민 및 국적법’으로 변곡점을 맞이했다. 이민 및 국적법은 기존에 존재하던 인종·국적별 이민 제한을 해제해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계기가 됐다. 이덕희 소장은 “1965년 이민법의 개정은 행정 절차를 거쳐 1968년부터 시행된 후 새 이민의 물결을 불러왔다”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새 이민의 물결로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 인구는 1970년 약 7,000명에서 1980년에 약 1만 2천 명으로 증가했고, 1990년에는 약 2만 4천 명에 도달했다. 1990년대 이후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 사회는 당시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2020년 미국의 공식 인구조사에 따르면 카지노 게임 종류 인구 145만여 명 중 한인 인구는 약 2만 3천 명이다. 이덕희 소장은 “초기 이민자들은 5~6세대까지 이어졌고, 새 이민의 역사도 벌써 50년이 넘었다”라며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 이민의 긴 역사를 강조했다.
한인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다
◇튼튼한 구심점이 된 한인 교회=기자들은 1968년 이민법 개정 이후 미주 이민이 급증한 시기인 1970~80년대에 카지노 게임 종류에 도착한 이민 1세대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기존에 만들어진 한인 이민의 유산 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미국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 종류에 정착한 한인들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한인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대영 회장은 “1960~80년대에 이민을 온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받았던 기관은 무엇보다 교회였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교회도 많아 이민자들이 쉽게 들를 수 있었다”라며 “교회를 통해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학교와 직장 등을 구하는 데도 도움을 얻었다”라고 설명했다. 아만다 장 변호사는 “대학 시절 교회의 한글 학교에서 직접 교재와 수업 내용을 구성하며 재미 한인 2세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다”라며 한인 교회에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아만다 장 변호사에게 한인 교회는 이민 초기의 적응을 돕는 곳이자, 자녀 세대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는 곳이기도 했다. 자녀 세대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고자 한 이유에 대해 장 변호사는 “어느 나라에 살든 스스로를 아는 것은 중요하기에, 아이들이 자신의 민족적 배경을 이해하기를 바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대학 졸업 후 미국 교회를 다녔지만, 자녀가 태어난 후로 아이들이 한국인과 만나고, 한국 문화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미국 교회와 한인 교회를 모두 다니기 시작했다”라고도 덧붙였다.
한인 교회는 카지노 게임 종류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대가 한국어와 한인의 정체성을 습득하는 주요 통로기도 하다. 장 변호사의 아들 제이슨 곽 씨(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22)는 카지노 게임 종류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고 있다. 그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으로부터 한글을 배우기도 했지만, 교회의 한글학교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교회에서 떡만둣국과 같은 한국 전통음식을 먹기도 하며 한국의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라며 “한인 교회는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라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이정덕 교수(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는 “재미 한인이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언어”라고 강조했다.
◇한인들과 교류하며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다=이들이 이민한 시기에는 여러 한인 단체가 새롭게 만들어지며 한인 공동체와 지역사회를 연결했다. 대표적인 단체로는 1970년대 이후 카지노 게임 종류에 정착한 한인이 주축이 돼 1981년에 설립된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회가 있다. 서대영 회장은 “초기 이민자들이 설립했던 대한인동지회, 대한인국민회와 같은 단체는 점차 사양의 길을 걸었고, 1970년대 이후 한인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새로운 한인 단체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라며 한인회 설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서 회장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뭉쳐 시 정부나 주 정부와 교섭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해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회가 시작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회는 △사회취약계층 보호 △한인 사회의 필요를 주류 사회에 알리기 △사회공헌활동 등을 통해 이민 사회뿐 아니라 카지노 게임 종류 사회 전반에서도 역할을 다하고 있다. 서대영 회장은 “특히 언어 사용이 어려운 이들이나 고령층을 대상으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 회장은 코로나19가 유행했을 때도 한인회가 고령층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음식을 배달하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돕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서대영 회장은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회가 한국 문화만을 고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카지노 게임 종류에 사는 한인들이 카지노 게임 종류의 문화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한인회관에서는 한인을 비롯한 현지 주민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면서도, 레이(lei)나 훌라댄스를 배우는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한인회는 한인과 타 민족 사람들이 공존하며 서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다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다=그렇다면 이민 1세대들은 카지노 게임 종류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해나가고 있을까. 기자단은 이들이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 나가고 있는지 물었다.
서대영 회장은 1985년에 15세의 나이로 카지노 게임 종류에 도착했다. 그는 “대전에서 태어나 15세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어머니를 따라 카지노 게임 종류로 오게 됐다”라며 “당시 이모님이 1960년도 한국에 주둔한 미군과 결혼하고 카지노 게임 종류에 자리를 잡았던 터라, 이모님이 다른 가족들을 초청해 이민을 올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서대영 회장은 “카지노 게임 종류에 먼저 정착한 이모님이 계셨고 중국계, 월남계, 필리핀계 등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있어 정체성 혼란을 겪지는 않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영어 알파벳만을 배운 채 카지노 게임 종류에 간 그는 언어 적응에 있어 다소 어려움을 겪었지만, 교내 프로그램을 통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서 회장은 “고등학교에서 운영한 ESL(English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은 이민 학생들의 언어 습득과 학교 적응을 도왔다”라며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주류 문화에 대해 배워나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ESL 프로그램은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으로 미국으로의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이민자를 위한 영어 학습 프로그램이다. 성장 과정을 거치며 별다른 사건 없이 현지에 적응한 것 같다고 말한 그는 “한국에서 말하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의 입장에서 현지인도 아니지만,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고 표현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정체성 혼란이 새로운 꿈으로=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문화회관 이사장이자 이민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아만다 장 변호사는 1983년, 18세의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카지노 게임 종류에 도착했다. 아만다 장 변호사는 청소년기에 미국의 문화와 언어를 접하며 한국과 미국 두 국가 모두에 이질감을 갖는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고 전했다. 그는 언어보다도 문화 적응이 어려웠다며 “고교생이 캠퍼스에서 키스하며, 교사에게 예의 없는 언행을 하는 등의 상황을 목격하며 미국의 개방적인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장 변호사는 크리스천 가치관을 지닌 재미한인 1.5세와 2세로 이뤄진 호놀룰루 청년상공회의소를 만나 소속감과 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상공회의소에서의 자원봉사 경험에서 영향을 받아 스스로의 정체성을 종교적으로는 크리스천으로, 민족적으로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고 정의 내리게 됐다”라고 전했다.
아만다 장 변호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변호사가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전했다. 장 변호사는 “대학생이던 1980년대, 한인들이 카트 상점을 많이 운영하던 동네의 재개발이 결정돼 많은 한인들이 강제로 쫓겨날 뻔한 일이 있었다”라며 진로를 정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시위나 한인 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을 막기 어려웠지만, 소송 끝에 재개발이 저지되는 것을 보며 법의 힘을 느꼈다”라고 말을 이었다. 이와 같은 경험의 영향으로, 장 변호사는 미국 카지노 게임 종류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민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을 확장하다=카지노 게임 종류대 한국학연구소 크리스토퍼 배 소장은 한국에서 태어나 1971년에 곧바로 미국 뉴욕의 백인 가정으로 입양돼 미국 본토에서 성장했다. 배 소장은 “미국인 가정에서 자랐기에 적응에 어려움이 있거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자라는 과정에서 많은 인종차별을 당하며 나의 선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학에서 한국인 유학생들과 친해지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져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2008년 카지노 게임 종류대에 부임하며 카지노 게임 종류로 이주한 그는 “카지노 게임 종류는 미국의 주들 가운데 동양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인종차별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라며 카지노 게임 종류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크리스토퍼 배 소장은 자신의 배경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배경으로 인류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배 소장은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까지의 기간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이 전혀 없어 한국 이름이나 생일조차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한국인임을 깨달았을 때 한국의 뿌리에 대해 궁금해져, 인류학을 공부하며 한인의 뿌리를 탐구하기로 결심했다”라고 전했다. 배 소장은 연세대로 교환학생을 갔던 시절, 주중에는 학교를 가고, 주말에는 다른 학생들과 발굴 현장에서 일하며 한국에서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전했다. 그는 교환학생 생활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모두가 영어를 사용하는 국제 기숙사가 아닌, 신촌의 하숙집에서 묵으면서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더욱 노출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온 학생들과 어린 노동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당시 경험은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 꾸려가는 이민의 삶=한인 이민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전형적인 미국인도, 전형적인 한국인도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이정덕 교수는 “이민자들은 점차 미국의 사회와 문화에 적응하지만, 이를 완전 동화로 설명할 수는 없다”라며 이민자 경험의 고유성을 강조했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아만다 장 변호사와 서대영 회장, 그리고 미국인이자 한국인의 정체성을 모두 지니게 됐다는 크리스토퍼 배 소장까지, 기자들이 만난 1세대 이민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자리 잡았다.
◇세대마다 천차만별인 이민 정체성=카지노 게임 종류의 한인들은 이민 1세대와 그 이후 세대가 큰 차이를 보인다. 이정덕 교수는 “이민 1세대는 한국에서 태어난 분들이라 한국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강렬하게 유지하고 있다”라며 “어렸을 때부터 한인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미국에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받았어도 한인이라는 입장에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전했다. 아만다 장 변호사 또한 “이민 1세대는 한국어, 한국 문화, 한인과의 교류 등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을 하기에 한인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한 편”이라고 전했다.
한편 제이슨 곽 씨처럼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거의 없는 이민 2세대는 스스로를 한인보다는 코리안 아메리칸, 혹은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이정덕 교수는 “부모가 자녀에게 한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기도 하지만, 미국식 교육을 받으며 머릿속에 한국에 대한 기억과 경험보다 미국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더 공고히 자리 잡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인들에 의해 아시아계로 지칭되기에 스스로를 백인은 아닌 미국인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전했다.
기자들이 직접 만나 본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 이민자들 역시 이민 2세대의 정체성에 대해 비슷한 시각을 가지면서도, 가정 환경에 따라 개인 차이가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아만다 장 변호사는 “이민 2세대는 영어, 미국 문화, 그리고 현지인과의 교류 등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을 하기에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하다”라면서도 “성장한 지역, 가족 등 자라 온 환경에 따라 개인 차가 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민자들은 저마다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122년 전 사탕수수 농장에서 시작한 카지노 게임 종류의 한인 이민은,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며 카지노 게임 종류 사회에 새로운 다양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카지노 게임 종류 연가〉의 이진영 감독은 “120년가량의 시간 차이는 존재하지만, 현재 많은 이민자를 수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과거 카지노 게임 종류의 모습을 비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지금, 카지노 게임 종류 한인 이민자들의 경험에서 융합과 포용의 가치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인포그래픽: 김예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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