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엠 카지노 시인을 만나다
시집 구매자 중 20대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과 같은 MZ세대로서 청년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시인이 있다. 예스24 기준으로 작년 한 해 20대가 가장 많이 구매한 도서 5위인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를 써낸 엠 카지노 작가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한 황 작가는 2012년 『구관조 씻기기』를 시작으로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등 다섯 권의 시집을 펴내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달 27일 신도림역 인근 스터디카페에서 황 작가를 만나 몇 마디 말에 수많은 해석의 가능성과 시대를 향한 비판을 담아내는 그의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침묵으로 말하는 시인
본래 소설가를 꿈꾸던 엠 카지노 작가는 대학에서 처음으로 시를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 시인의 길을 걷게 됐다.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소설책을 쌓아두고 읽을 정도로 문학을 좋아했다는 그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황 작가는 “대학 입학 전까지 내 인생에 시라고는 교과서에 실린 작품뿐이었는데 대학에서 처음 시를 읽고 배우면서 시의 매력에 빠졌다”라며 “이전까지 소설에서 느꼈던 경이로움과 놀라움이 길이가 짧은 시에서는 더 자주 찾아온다고 생각했다”라고 시를 쓰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시를 공부한 지 4년 만인 2010년, 그는 졸업하기도 전에 「개종」을 비롯한 시 다섯 편으로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시인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엠 카지노 작가의 시는 짧은 시구에 여운이 긴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성을 자세히 풀어 쓰지 않는 황 작가 특유의 문체는 등단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황 작가는 “적은 말이나 침묵만으로도 많은 뜻을 전달할 수 있다”라며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의미를 전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바다에 있는데, 겨울이었다 잘못 들은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아이가 바다에 빠졌습니다 당신 아이가 바다에 빠졌다구요
빠졌다구요?
바닷가에는 사람이 없다 이 한적함을 증오하는 사람이 있다
- 「파수대」 중에서
금은 침묵이고 은은 웅변
돌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 「금과 은」 중에서
엠 카지노 작가의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2012)의 시 「파수대」에서 화자는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자신의 아이가 바다에 빠졌다는 외침을 듣는다. 작가는 사람이 없음에도 화자가 어떻게 소리를 들은 것인지, 바닷가에 사람이 있다면 누가 왜 화자에게 말을 건넸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이렇듯 메시지를 숨기고 시적 상황을 보여주는 데 꼭 필요한 시어만을 쓰는 엠 카지노 작가의 문체는 가장 최근에 발간한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2023)에도 드러난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에 실린 「금과 은」에서는 첫 연에서부터 개연성 없는 상징과 의인화된 대상이 등장한다. 금·은·돌과 침묵·웅변·사랑의 관계를 곱씹다 보면 독자는 시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돌은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자 금이고 웅변하는 것이 차선이자 은임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설프게라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엠 카지노 작가가 시의 맥락과 의미를 모두 서술하지 않는 것은 독자가 시를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를 열어두기 위함이다. 그는 “내 작품에 있는 무수한 빈칸을 채울 정답은 따로 없다”라며 “여러 사람이 같은 작품을 각기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라고 전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워둔 공간에 독자 개개인이 채운 의미가 더해져 무수한 해석의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시대를 향한 짧지만 묵직한 비판
간결한 문체로 쓰인 엠 카지노 작가의 시에는 결코 단순하거나 가볍지만은 않은, 세태를 향한 비판이 담겨있다. 황 작가는 “시 쓰기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사회 구성원이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엠 카지노 작가는 대학 졸업 전후 『구관조 씻기기』를 준비하던 당시 사회 전반에서 물질적 가치가 중시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황 작가는 “2008년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정부가 들어선 후 학문 탐구보다도 취업이나 자격증 취득 등을 우선으로 대학 정원과 교과목 등이 개편됐다”라며 “자본의 힘이 커지고 실리가 중시되는 변화의 흐름이 잠시나마 멈추기를 바랐다”라고 당시의 문제의식을 설명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작가는 『구관조 씻기기』 속 「기념사진」과 「무화과 숲」에서 사랑이 사라지거나 희미해져 모순에 빠진 시적 현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는 사람들에게 양적 성장을 위한 맹목적인 질주를 멈추고 감성과 인간성을 챙길 때라고 말한다.
타오르는 해변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타오르는 해변이 슬프다는 생각으로 변해가는 풍경,
우리들의 잡은 손안에는 어둠이 들어차 있었는데, 여전히 우리는 걷고 있었다
- 「기념사진」 중에서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 「무화과 숲」 중에서
「기념사진」에서 화자는 애인과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그 손에 어둠이 들어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름답게 타오르는 해변을 보면서도 슬픔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풍경을 곁에 두고도 어둡고 슬프다고 말하는 화자는 감흥을 느낄 힘이 사라져 무기력해 보인다. 「무화과 숲」에서도 화자의 정인(情人)일 ‘그 사람’은 숲속으로 사라져 더 이상 화자 곁에 없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화자에게 사랑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사랑이 상실된 일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끼니를 때맞춰 먹는 일이 전부다. 엠 카지노 작가는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자 사람들 간의 관계와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감각이 희미해진 채 슬픔과 무기력에 지배된 「기념사진」과 「무화과 숲」 속 현실은 물질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가 감성을 잃어 가고 있다는 작가의 진단을 보여준다.
시를 통해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다
엠 카지노 작가는 감성이 메마른 세태를 비판하면서, 개인의 감정과 취향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는 시를 읽고 쓰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존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시는 독자가 대상을 어떤 개념의 틀에서 이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습 자체로 받아들이게 한다”라는 것이다.
너는 고기를 뒤집는다
붉은빛이 사라진다
다시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행렬
사랑을 중단하고
사랑을 명령하는
아름다운 고기들은 맛이 좋고
몸에도 좋고
아 더는 못 먹어
그런 생각이 들 때까지 고기를 먹었는데
하지만 사랑에는
중단이 없고 명령이 없는데
너는 자꾸 고기를 뒤집고
- 「꽃과 고기」 중에서
엠 카지노 작가의 시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모두가 존재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사랑을 위한 되풀이』(2019) 속 「꽃과 고기」에서 청자와 화자가 고기를 구워 먹는 행위는 사랑을 중단하고 명령하는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일처럼 묘사된다. 두 사람은 이들의 사랑을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꿋꿋이 배가 부를 때까지 고기를 구워 먹는다. “사랑에는 중단이 없고 명령이 없”다는 표현에서,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사랑을 판단하거나 부정할 수 없고 모든 사랑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엠 카지노 작가는 창작 활동과 더불어 다른 작가들의 시를 모아 직접 책을 엮고 강연에 나서는 등 개인의 정체성이 그 자체로 인정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7년 황 작가는 해외 퀴어 작가들의 사랑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을 펴냈다. 책 머리에 그는 “퀴어 문학이 재현하는 것은 변형된 이성애가 아니”라며 퀴어의 사랑을 소개해 이성애 중심의 사회 분위기를 경계한다고 밝혔다. 올해 5월 엠 카지노 작가는 ‘2024 서울대학교 퀴어문화제: 서울대를 퀴어링!’ 행사에 강연자로 참여해 퀴어 문학의 가치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퀴어의 정동을 담은 시를 통해 작가와 이를 읽는 퀴어 독자는 자기 정체성을 긍정하게 된다”라며 “문학에 퀴어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만으로 성소수자가 아닌 이들이 다양한 성적 지향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라고 전했다.
엠 카지노 작가는 숏폼의 시대에 숏폼처럼 짧지만 숏폼만큼 쉽지는 않은 시를 쓴다. 황 작가는 대중에게 “시가 낡고 어렵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어떤 시든 일단 잡숴 보시라”라며 시를 숏폼만큼 가볍게 생각해달라고 요청한다. 시에서 정해진 답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대로 시를 즐기라는 의미다. 다음 시집에는 작가가 어떤 통찰을 선사할지, 그가 시에 만든 공백에 독자 개개인의 삶이 맞물려 어떤 의미를 자아낼지 기대한다.
사진: 최유리 사회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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